물에 빠진 소녀 구해 ‘파란눈의 영웅’ 등극… 상하이 ‘서양 레이펑’ 3인방

입력 2016-05-22 07:00
중국 상하이 젠차오대학 하천에서 물에 빠진 17세 후모양의 목숨을 구해 영웅으로 떠오른 외국인 3인방에게 후양의 부모가 16일 비단기를 선물했다. 펑파이

파란 눈의 외국인 3명이 물에 빠진 17세 중국 소녀를 구하면서 영웅으로 떠올랐다. 중국 언론은 이들 3명에 ‘서양 레이펑(雷鋒)’이라는 별명을 붙여줬다. 1962년 인민해방군 병사로 근무하다 22세의 나이에 교통사고로 숨진 레이펑은 나중에 일기를 통해 남모르게 당과 인민에 헌신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중국에서는 ‘멸사봉공(滅私奉公)’의 영웅으로 통한다.
'파란눈의 영웅'인 러시아인 로만, 프랑스인 바스티앙, 러시아인 키릴(왼쪽부터)이 ‘레이펑’ 동상 아래서 얘기를 나누고 있다. 펑파이
 화제의 주인공은 상하이 젠차오대학 국제디자인학원에 다니는 1학년 러시아인 로만과 키릴, 외국인 교수 프랑스인 바스티앙이다. 지난 14일 밤 9시쯤 기숙사 베란다에서 야경을 즐기던 세 사람은 멀리 하천에서 희미하게 허우적대는 사람을 발견했다. 비명소리도 들리지 않아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하지만 이내 긴박한 상황임을 직감한 세 사람이 달려가자 현장에서는 한 소녀가 물에 빠져 필사적으로 몸부림치고 있었다.

 순간 세 사람은 지혜를 발휘했다. 로만이 먼저 물 속에 들어가 소녀를 잡고 뒤에 차례로 키릴과 바스티앙이 길게 한 손씩 잡아 인간 사슬을 만들었다. 하지만 소녀의 몸부림치는 힘이 너무 강해 1차 시도는 실패했다. 이어 양손을 사용해 엇갈려 잡는 방식을 바꾼 뒤 마침내 소녀를 구할 수 있었다. 바스티앙이 다음날 발견한 사실이지만 현장에는 구명 튜브가 상비돼 있었다.

 세 사람은 정서가 불안한 듯 흐느끼는 소녀를 외국인 기숙사 건물로 데려갔다. 로만은 자신의 슬리퍼를 벗어줬고, 바스티앙은 옷을 건넸다. 하지만 문제는 의사소통이었다. 말이 통하지 않는 세 사람은 소녀의 등만 두드려줄 수 있었다.

  다행히 중국어를 할 수 있는 한국 유학생 박주영양을 찾아 더운 물로 샤워를 하게 했다. 세 사람은 학교 측에 소녀를 넘기고 안전하다고 확인한 뒤 각자 기숙사로 돌아갔다. 그제서야 로만은 등에 상처를 느꼈고 휴대전화도 물에 빠져 망가진 것을 알았다.

 온라인 매체 펑파이 등에 따르면 목숨을 건진 소녀는 인근 직업 고등학교에 다녔던 17세 후모양이었다. 후양의 부모들은 지난 16일 딸을 구해준 파란 눈의 은인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담은 ‘비단기(旗)’를 만들어 선물했다. 대학측도 서양 레이펑 3명에게 ‘레이펑 장학금’을 수여하기로 했다.

베이징=맹경환 특파원 khmae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