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말을 마친 백발의 노인은 갑자기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이 노인은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74) 전 일본 총리였다. 지난 17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있었던 일이다.
18일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고이즈미 전 총리가 언급한 ‘중병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은 2011년 3월 동일본대지진 당시 현장 구조에 나선 미군 가운데 방사성 물질 피폭자들이다.
당시 산리쿠 앞바다에 있던 항공모함 로널드 레이건호에 타고있던 미군들은 ‘도모다치(친구) 작전’이란 이름의 구조작전에 투입됐다가 방사성 물질에 노출됐다. 폭발사고가 난 후쿠시마 제1 원전 운영주체인 도쿄전력은 동일본대지진 이후 원자로가 녹아 방사성 물질이 유출됐으나 이와 관련한 정보를 제대로 공개하지 않아 방사선 차단 대책 없이 구조작업에 투입됐기 때문이다.
피폭자 등 400여명은 2012년 일본 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기자회견은 그동안 반핵운동에 앞장선 고이즈미 전 총리가 이들을 지지하기 위해 연 것이다.당시 구조활동 참가자 중에 피폭에 따른 질환을 호소하는 사람이 속출했다. 암과 뇌종양으로 이미 7명이 숨졌다.
고이즈미 전 총리는 “지금도 환자가 늘어나고, 증세도 심해지고 있다”며 “원전 찬반을 떠나 일본이 이들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소송을 제기한 대니얼 헤어는 “일본이 이 문제(동일본 대지진 지원에 나섰던 미군의 피폭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접근하고 있음을 처음 느꼈다”고 말했다.
이달 말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미국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원폭 피폭지 히로시마를 방문해 ‘비핵화 의지’를 강조하기로 하면서 일본 내에서 반핵·반원전 운동도 탄력을 받고 있다.
이종선 기자 remembe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