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빠다8>2월18일 동행

입력 2016-05-18 23:43
가정보다 특종을 좇던 16년차 기자였습니다. 올해 초 3살 딸아이가 급성백혈병 진단을 받고서야 ‘아빠’가 됐습니다. 이후 인영이의 투병 생활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땅의 모든 소아난치병 환우와 아빠엄마들을 응원합니다.



KBS에서 하는 동행이란 프로그램이 있다. 벼랑 끝에 몰린 어려운 이웃과의 동행(同行)을 통해 동행(同幸)을 만든다는 취지의 프로그램이다. 인영이가 아프기 전 토요일 오후 채널을 돌리다 가끔 보면서 안쓰럽다고 잠깐 생각하고 지나갔다. 요즘 아내와 “우리가 동행의 주인공이 된 것 같다”고 말하곤 한다. 그 프로그램에 소개된 주인공들처럼 우리 가족이 벼랑 끝에 몰렸다는 것 보다는, 함께 걷고 있다고 느끼는 고마운 분들이 많다는 이유에서다.

어제 세종에서 함께 생활했던 기자와 공무원 동료들이 인영이를 위해 청사에 헌혈차를 불렀다는 소식을 들었다. 바쁜 일상 속에서 자기 피를 뽑는다는 게 쉽지 않은 일임에도 많은 분들이 동참했다고 한다. 기재부 최상목 송언석 두 차관님을 시작으로 기자 선후배들이 인영이의 회복을 위해 팔을 걷었다. 따스한 어머니 같으신 기재부·공정위·농식품부·국토부 기자실장님들도 발 벗고 나서줬다고 들었다. 뭐라고 고마운 마음을 전해야할지 모르겠다. 그 덕인지 인영이는 오늘도 수혈을 잘 받았다.
세종 청사에 인영이를 돕기 위한 헌혈차가 왔다. 남에게 베풀지 못하고 살았는데 많은 도움을 받았다. 기쁘게 갚아야 한다.

처음 인영이가 발병한 직후 일주일동안 참 많이 힘들었다. 나 혼자 이겨내야 한다는 생각에 무섭기도 했다. 그래서 회사 선후배들과, 페이스북에 나 좀 봐달라고, 힘들다고 SOS를 쳤던 것 같다. 반신반의하고 보낸 내 타전에 많은 분들이 과분한 위로와 기도를 해주시고 있다. 살아오면서 내가 베풀었던 선의의 만 배 이상을 받고 있는 느낌이다. 특히 세종시 초기 ‘세베리아’ 시절부터 함께 동고동락했던 세종시 기자 선후배들의 격려는 아내와 내 힘의 원천이 된 듯싶다. 아내는 “그동안 술 허투루 먹은 건 아닌 것 같네”라고 했고, 나는 세종 복귀 후 기사로 ‘물 먹이는’ 가슴 아픈 일은 다시는 못할 것 같은 심정이다.
고등학생인 국민일보 라동철 선배 따님 작품. 인영이를 위해 직접 만들어 전해줬다.

아직 갈 길이 멀지만 우리 인영이는 벌써 너무나 많은 사랑을 받은 것 같다. 인영이가 완치 판정을 받고난 뒤 잔치를 열어야겠다. 그날이 올 때까지 인영이를 포함해 우리 가족 이까짓 백혈병 따위와 맞서 싸워 이기겠다. 세종서 제대로 해준 것도 없는 선배 보겠다고 올라온 후배가 “지난 세종 3년도 후딱 지나가지 않았냐고, 앞으로 3년도 금방”이라고 위로해준 것처럼 후딱 잔치를 열어야겠다. 이글을 보는 모든 분들은 그날 필참하셔야 한다. 물론 가족동반은 필수다.

이성규 기자 zhibag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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