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고모드 돌입한 정진석, 정치력 부재 비판 돌파 카드 있을까

입력 2016-05-18 15:43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가 칩거에 들어갔다. 비대위와 혁신위원장 인선에 따른 계파 갈등이 폭발한 당 상황을 수습할 방안을 찾기 위해 ‘장고(長考)’에 돌입한 것이다.

정 원내대표는 이날 광주 국립 5·18 민주묘지에서 열린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 참석 후 KTX로 귀경 도중 지역구인 충남 공주에서 하차했다. 그는 한 언론에 “집권 여당에서 상상하지 못한 일이 벌어졌다”면서 “큰 충격을 받았다. 상임전국위와 전국위 무산의 의미가 무엇인지 판단이 안 선다”고 말했다. 이어 “당 쇄신과 당 지도부 구성 임무를 계속해야 할지 고민”이라면서 “몸과 마음이 피곤하다. 생각을 좀 가다듬어야겠다”고 했다. 정 원내대표는 당분간 지역구에 머물 것으로 알려졌다.

임시 지도부와 혁신위원장 인선이 주류인 친박(친박근혜)계에 의해 비토당하면서 정 원내대표의 리더십은 큰 상처를 입었다. 이번 사태를 통해 ‘계파의 굴레’에서 벗어나게 됐다는 일각의 평가도 있지만, “앞으로 친박계나 청와대의 뜻에 어긋나는 어떤 일을 할 수 있겠냐”는 한계론을 제기하는 의견도 많다.

원군이 될 비박(비박근혜)계 역시 그의 정치력에 의문을 제기한다. 비박계 한 의원은 “정 원내대표가 자신의 구상을 관철시키기 위해서는 전국위가 무산되지 않도록 철저히 대비했어야 한다”며 “전국위 의결 사항이 아닌 혁신위원장 인선을 서둘러 친박계를 자극한 점도 이해하기 힘들다”고 지적했다.

당내 일각에선 정 원내대표의 당선 일성이 “당이 친박이 되어야 한다”고 했지만 정작 비대위 인선 발표 등에 대해 사전에 친박계 동의를 구하지 못한 점 등을 꼬집으며 ‘정무감각’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정 원내대표의 숙고모드를 두고 정치권에선 상황이 가라앉기를 기다리는 동시에 양 계파에 ‘당의 앞날을 위해 자중하라’는 메시지를 던진 것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그는 이날 5·18 기념식 후 친박계가 요구하는 비대위 인선 수정 방침이나 비박계가 요구하는 당선자 총회 개최 등과 관련한 입장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입을 굳게 닫았다. 다만 “새누리당을 대표해 5·18 민주영령들을 추모하기 위해서 광주에 왔다”며 당 대표 공석 상황에서 선출직 원내대표인 자신이 당을 대표한다는 점은 분명히 했다. 일각에서 제기되는 거취논란을 잠재우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한편 정 원내대표는 이날 오전 광주행 KTX 열차에서 현기환 청와대 정무수석과 조우했다. 두 사람은 바로 앞 뒷자리에 앉았음에도 단 한마디의 인사말도 나누지 않았고 악수조차 하지 않았다. 광주에 도착하는 약 2시간 반 동안에도 둘은 눈 한번 맞추지 않은 채 침묵을 지켰다.

한장희 기자 jhh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