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레로 만나는 예수, 팽팽한 긴장감속 감동 두배

입력 2016-05-18 15:33
“훌쩍, 훌쩍, 훌쩍.” 17일 저녁 창작 발레 ‘메시아’ 공연이 한창인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객석의 누군가가 훌쩍거립니다. 누가 공연장에 와서 이렇게 훌쩍거리나 싶겠지요. 감기로 인한 콧물 때문은 아니었습니다.

“철썩, 철썩, 철썩.” 무대 중앙에 예수가 쓰러져 있습니다. 두 명의 군병이 예수에게 채찍질을 가합니다. “철썩, 철썩.” 국립극장이라 그런지 스피커 소리가 좋습니다. 그래서 채찍 소리가 더욱 강렬하게 다가옵니다. 군병이 채찍을 휘두를 때마다 조명이 번뜩입니다. 빨간색의 강렬한 빛이 예수를 비췄다가 사라집니다. “철썩”, 그리고 “훌쩍.”

발레 공연이 대개 그렇지만 이 메시아도 무대에선 음악, 이를 배경으로 보여주는 발레리나들의 몸짓이 전부입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힐 때 술렁거렸습니다. 예수가 승천할 땐 나지막히 환호했습니다. 그만큼 이날 메시아는 가슴으로 다가왔습니다.

발레 메시아는 메시아, 곧 예수 그리스도의 이야기입니다. 4복음서에 나오는 예수의 삶을 2막 14장으로 구성했습니다. 스토리는 뻔합니다. 이날 3층까지 관객이 들어찼는데 교회 성도들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만 교회 성도라면 누구나 아는 이야기입니다. 진부합니다.

하지만 그 진부함에 이화여대 무용과 신은경 교수의 치밀한 안무와 발레리나 80여명의 호흡, 이를 받쳐주는 음악이 더해지자 진부함은 어느새 팽팽한 긴장감으로 바뀌었습니다. 여기에 골고다 언덕, 갈릴리 호수 등 무대 뒤편에 비추어 영상으로 만든 배경, 발레리나를 비추는 각도에 따라 다른 느낌을 구사하고 있는 조명 등이 무대의 완성도를 높였습니다.

바로 옆에 앉은 한 관객이 함께 온 동료 3명에게 설명합니다. “역시 이화여대 대강당보다 큰 세종문화회관에서, 인원도 20여명이 느니까 훨씬 좋네요.”

1막에서는 유다가 목을 매는 장면이 압권이었습니다. 유다는 예수 판 것을 후회하며 은 삼십을 대제사장에게 도로 갖다 줍니다. 하지만 대제사장은 내칩니다. 그를 사탄과 귀신 6명이 포위하고 정죄합니다. ‘너는 예수를 팔았어. 너 때문이야.’ 유다가 도망치려 하지만 사탄과 귀신은 유다를 놔주지 않습니다. 급기야 유다는 무대 뒤편에 세워진 나무에 목을 매고 맙니다.

2막에선 솔리스트들의 감정 표현이 무대를 압도했습니다. 예수를 부인하고 예수와 눈이 마주친 베드로가 가슴을 치며 울부짖습니다. 골고다 언덕에서 막달라 마리아는 천사에게 예수의 부활 이야기를 듣고 그 벅찬 감격을 춤으로 표현합니다. 갈릴리 바닷가에서 부활한 예수를 만난 베드로가 충성을 맹세합니다. 이들은 무대 전체를 활용해 슬픔과 환희를 몸짓으로 이야기했습니다.

이날의 하이라이트는 예수의 승천 장면. 극 중에서 예수가 피아노 줄에 매달려 공중으로 올라갑니다. 헨델의 ‘할렐루야’가 울려 퍼지고 발레리나들이 모두 나와 기뻐 찬양합니다.

이번 무대는 이화창립 130주년을 기념해 이화여대와 이화여대 총동창회가 주최하고 이화발레앙상블이 주관했습니다.

막이 내린 뒤 40여분 만에 신 교수가 로비에 나타났습니다. 학교 관계자, 지인 등 인사해야 할 이들이 많았을 텐데 말입니다. 분명히 무대 뒤에서 단원들과 함께 감사하며 뜨겁게 기도했을 것입니다. 이 기도가 13년간 메시아를 무대에 올려온 신 교수의 힘이 아닐까 싶습니다.

전병선 기자 junb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