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권사님 한 분이 내게 전화를 하면서 사모님이 자신의 전화를 안 받는다고 말했다. 그냥 안 받는 게 아니라 자신이 거는 전화를 아예 차단해 놓은 것 같다고 말하는 게 아닌가? 그래서 아내더러 권사님에게 전화를 해보라고 했다. 알고 보니 그 권사님은 엉뚱한 번호로 전화를 해놓고 사모님이 전화를 거부하고 있다고 한 동안 오해하고 있었다. 다행이다. 그나마 오해가 풀렸으니 말이다.
사모가 성도의 전화를 일부러 받지 않을 이유가 결단코 없건만 놀랍게도 사람들은 자신의 전화를 일부러 받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다. 사모가 성도에 대해서 무슨 감정이 있을 리 만무한데도 말이다. 한두 번 전화해보고 통화가 되지 않으면, 사람들은 온갖 상상을 하기 시작한다. 왜 전화를 받지 않을까? 나에 대해서 악감정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내가 배운 게 없다고 무시하는 것일까? 의혹에 의혹이 덧붙여져서 감정이 상하게 된다. 그리고 관계는 엉망이 되어버린다.
이런 일이 발생한다면 긍정적인 방향에서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번 경우처럼 자신이 실수했을 가능성도 있고, 자신이 실수하지 않았더라도 여러 가지 충분히 이해할 만한 상황들은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 놀랍게도 사람들은 말도 안 되는 일들을 믿는다. 전화 통화가 몇 번 되지 않으면, 사모가 성도의 전화를 일부러 받지 않는 것이라고 확신하기 시작한다. 정말 그런 것인지 확인도 해보지 않고 말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아도 절대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 당연함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런데 그렇게 말도 안 되는 일들을 믿는 결과는 크다. 믿고 신뢰했더라면 서로 마음을 터놓고 사귐이 있는 관계가 지속될 수 있는데 말도 안 되는 일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마음속에 장벽이 쌓이게 되고 더 이상 발전적인 관계를 만들어나갈 수 없게 된다. 믿음이 사라지면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된다.
사춘기 자녀들 가운데는 자신이 부모의 친 아들이나 딸이 아니라 주워온 아이라고 믿는 일이 있다. 이웃집 사람이 너는 주워 온 아이라고 농담으로 던진 말을 심각하게 받아들인다. 그 동안 아버지와 어머니가 나에 대해 심하게 혼낸 일들을 생각하면서 그것은 내가 친자식이 아니라 주워온 아이이기 때문에 그런 것이라고 확신하기 시작한다. 그리고서 진짜 자신의 친부모를 찾겠다고 집을 나선다. 이것은 얼마나 어리석은 생각인가? 부모의 사랑을 확신하고 그 사랑 속에서 살아간다면 행복하고 많은 것을 누릴 수 있는데 부모를 의심하고 그 울타리를 벗어나 위험 속으로 들어간다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일 것인가.
하와가 선악과를 먹었던 것은 바로 그런 상황에서였다. 어느 날 에덴동산에 뱀이 나타나서 하와에게 다가와 속삭였다. 선악과를 하나님께서 먹지 말라고 한 이유는 만일 네가 그것을 먹으면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될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라는 말을 했다. 사탄의 말도 안 되는 말을 들은 하와는 그 말을 철석같이 믿었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고 나에게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하신다는 사실을 의심하게 하고, 내가 더 좋은 길로 가지 못하게 만들기 위해서 선악과를 먹지 못하게 했다는 그런 거짓말을 사실로 받아들였다.
말도 안 되는 그 말을 믿은 결과는 너무나 컸다.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며 살았더라면 에덴동산에서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를 계속 누릴 수 있었겠지만 그들은 하나님이 동산에서 거니는 소리를 듣고 숨어야 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져버린 것이다.
우리는 가능하면 긍정적인 방향에서 모든 것을 판단해야 한다. 남편이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할 것이 아니라 나를 사랑하지만 표현 방법이 서툴고, 남녀의 차이 때문에 서로 생각하는 방식이 다를 것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이것은 사실이다. 남자의 행동방식과 여자의 행동방식은 100% 정반대라고 하지 않던가. 아내가 나에게 잔소리를 하는 것은 나를 믿지 못해서가 아니라 나를 사랑하기 때문에 하는 말이라고 받아들여야 한다. 그런 긍정적인 생각으로 대하게 된다면 문제들이 하나씩 풀려나갈 것이다. 정말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 있다면, 도무지 긍정적으로 생각하지 못할 일이 있다면 직접 대화를 통해서 문제를 해결해나갈 수도 있을 것이다.
사탄은 우리의 마음속에 불신의 씨앗을 뿌려 놓는다. 잡초는 뽑아내고 또 뽑아내도 자꾸만 자라는 것처럼 한번 뿌려진 불신의 씨앗은 조금만 지나면 온 마음을 장악해버리고 만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나 자신의 마음을 살펴야 한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우리의 마음이기 때문이다.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잠언 4장 23절) 그래서 우리의 마음의 밭에 혹시 불신의 씨앗이 뿌려져 있는지 살펴서 제거해야 한다.
불신을 제거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직접 대화하는 것이다. 제3자와 대화는 오히려 우리의 불신을 부추길 가능성이 많다. 그리고 불신의 불을 확산시키는 결과를 낳는다. 그래서 성경은 돌아다니며 남의 이야기를 하고 수군거리는 것을 아주 심각한 죄로 규정한다.(로마서 1장 29절) 직접 만나 이야기하면 우리는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사실은 전화를 거부하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내가 잘못된 번호를 눌렀다는 사실을 알게 될 수도 있다. 남편이 나를 무시해서가 아니라 정말로 나를 사랑하기 때문에 한 행동이라는 사실을 알게 될 수도 있다.
욥은 자신에게 재앙이 닥쳤을 때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고 하나님을 저주하라는 사탄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보이는 현상만 보면 하나님이 욥을 미워하셨고 욥에게 엄청난 시련을 주신 셈이다. 사탄의 속삭임은 설득력이 있었다. 하지만 그 순간에도 욥은 사탄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기보다는 하나님을 신뢰했다. 욥은 이렇게 고백했다.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욥기 1장 21절) 비록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을 자신의 머리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지만 하나님께서는 다 알고 계시며 결국 자신을 단련하신 후에는 순금이 되어 나오는 결과가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욥기 23자 10절) 그리고 그것은 옳았다.
지금 나의 마음속에는 어떤 생각들이 떠오르는가?
이국진 목사
대구=최일영 기자 mc102@kmib.co.kr
[목회자칼럼]대구 남부교회 이국진 목사, '아내가 전화를 받지 않은 이유'
입력 2016-05-18 12: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