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공영 TV 방송에서 한 코미디언이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의 독재를 풍자했던 시에 대해 독일 법원이 재낭송 금지 명령을 내렸다. 이로 인해 “외교적 필요성 때문에 ‘유럽의 가치’를 팔아넘겼다”는 비난이 한층 거세질 전망이다.
일간 도이체빌레는 독일 함부르크 지방법원이 17일(현지시간) 해당 시를 대중을 상대로 다시 낭독해선 안 된다는 판결을 내렸다고 전했다.
법원은 해당 시가 지닌 “모욕적이고 명예훼손적인” 요소를 판결 이유로 들며 이 시가 풍자를 넘어서 “순전한 모욕”에 가깝다고 판결했다. 이어 ‘예술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 또 에르도안 개인의 권리를 견주어 이 같은 판결을 내렸다고 설명했다.
이 시는 3월 코미디언 얀 뵈머만이 독일 공영방송 ZDF 심야토크쇼 ‘네오 매거진 로열’에서 낭송했다. 에르도안이 염소와 성관계를 하는 한편 아동 포르노를 즐겨보며 쿠르드족을 탄압한다는 내용이다.
이번 판결에 따르면 이 시에서 6개 마디만 재낭송이 허용된다. 법원은 “시에서 드러난 인종적 편견과 종교적 비방, 성적 요소를 고려했을 때 이를 재낭송 하는 것은 관용 범위를 넘어선다”고 했다.
독일 현행법에 따르면 외국 정상에 대한 모욕은 금지되어 있으나 정부가 이에 대한 법적 절차 진행 여부를 결정할 수 있다. 검찰 측은 아직 구체적인 처벌안을 내놓지 않았다.
이번 사건을 두고 독일에서는 외교적 필요성 때문에 표현의 자유를 억압했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이 때문에 독일 의회에서는 집권 기민당 의원이 이 풍자시를 직접 낭송하기에 이르렀다. 절차 진행을 허가한 앙겔라 메르켈 총리로서는 진퇴양난이다.
반(反) 에르도안 기류는 독일 내에서만 그치지 않고 있다. 에르도안이 자국에서 테러 대응을 이유로 독재행태를 이어가자 유럽연합(EU)이 터키에게 난민협정의 대가로 약속했던 무비자 여행이 무산될 위기에 놓였다. 자칫 메르켈이 힘들여 이끌어 낸 난민 협정 자체가 파기될 위기다.
조효석 기자 prome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