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하는’ 성시경을 기다리고, 또 기다리고 [리뷰]

입력 2016-05-17 19:24
젤리피쉬엔터테인먼트 제공

성시경(37)은 참으로 다재다능하다. 감미로운 목소리와 빼어난 가창력? 말해 뭐하나. 능수능란한 입담에 수려한 진행 실력까지 갖췄다. MC니 뭐니 찾는 곳이 너무 많다.

그래도, 성시경은 가수다. 무대에 오를 때 진면목이 드러난다. 노래를 하는 순간 가장 빛이 나는 그다. 성시경 공연을 아예 본 적 없는 사람은 있어도 ‘한 번’ 본 사람은 없을 테다. 중독성이 대단하다. 한 번 빠지면 약도 없다.

성시경의 축가 콘서트는 어느덧 5년째 이어지고 있다. 꽃피는 5월이 한층 더 기다려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지난 14~15일 서울 연세대 노천극장에서 열린 올해 공연은 어김없이 매진 사례를 기록했다. 예매 전쟁에서 승리한 이들에게만 허락되는 특별한 시간이다.

한데, 15일 공연에 예기치 않은 불청객이 찾아들었다. 이른 오후부터 비가 내렸다. 공연이 진행되는 3시간 내내 굵은 빗줄기가 쏟아졌다. 쌀쌀한 밤공기에 폭우와 강풍이 더해졌다. “여기는 날씨 좋으면 천국인데 비만 오면 지옥”이라는 성시경의 말이 더없이 적절했다. 재작년 공연의 악몽이 되살아났다.


관객들에게 연신 미안해하던 성시경은 더욱 힘껏 노래했다. 온몸으로 장대비를 맞으며 드넓은 무대 곳곳을 누볐다. 그런 와중에도 음정이나 감정이 흔들리지 않았다. 그의 따뜻한 음성으로 추위는 녹아내렸다.

‘좋을텐데’ ‘너는 나의 봄이다’ ‘너의 모든 순간’ ‘희재’ ‘거리에서’ 등 성시경표 달달한 발라드가 귀를 간질였다. 성시경 목소리로 듣는 10㎝의 ‘봄이 좋냐’는 왠지 색다른 느낌. 게스트 거미·윤종신과 각각 듀엣으로 부른 ‘유 아 마이 에브리싱(You are my everything)’ ‘본능적으로’는 기막힌 하모니를 만들어냈다.

즉석에서 불러준 ‘비처럼 음악처럼’은 깜짝 선물 같았다. 빗속에 오들오들 떤 고된 시간을 전부 보상받은 듯했다. ‘넌 감동이었어’ ‘걱정말아요 그대’ ‘두 사람’ ‘내게 오는 길’로 이어진 앙코르는 황홀할 지경이었다.


못내 아쉬운 한 가지가 있었다. 몇 해째 돌고 도는 비슷한 셋리스트. 새 앨범을 내겠다고 굳게 약속한지가 언젠데 아직 감감무소식이다. 성시경의 정규 앨범은 2011년 발표한 7집 ‘처음’이 마지막이다. 무슨 영문인지 자꾸 출연하는 방송 수만 늘고 있다.

현재 성시경이 진행하는 프로그램을 쭉 훑어볼까. JTBC ‘비정상회담’, 올리브TV ‘오늘 뭐 먹지?’ ‘올리브쇼 2016’, 채널CGV ‘무비 버스터즈’, SBS ‘보컬 전쟁: 신의 목소리’, MBC ‘듀엣가요제’, KBS 2TV ‘배틀트립’ 등 MC를 맡고 있다. 몸이 두 개라도 모자랄 판이다.

공연 말미 성시경은 요즘의 고민을 털어놨다. 그는 “나도 내가 이렇게 (방송을) 많이 하게 될 줄 몰랐다”며 “(성격이) 우유부단한 편이라 시작하면 그냥 하게 된다. 계획했던 건 아닌데 그렇게 돼버렸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어진 진솔한 이야기.


“제 꿈은 분명히 아니에요. 그래서 요즘 힘든 것 같아요. 물론 배부른 소리겠죠. 앨범도 안 내는 놈인데 공연하면 이렇게 많이들 보러와 주시고…. 정신 차릴 수 있게 해주신 하루인 것 같습니다. 이 마음 잊지 않고, 앨범 내겠습니다.”

엔딩곡을 남겨놓았을 때도 재차 다짐했다. “오늘 여러분과 함께하며 에너지를 받았으니 정신 잘 차리고, 노래하는 마음 잊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이번만큼은 진정 허투로 들리지 않았다. 객석을 바라볼 때 반짝이던 그의 눈빛 때문이었을까. 끝까지 자리를 뜨지 않은 관객들에게 감동해 결국 쏟아낸 눈물 때문이었는지도.


지난 연말 콘서트에서 했던 약속이 여전히 귓가에 선하다. 올해 계획을 얘기하면서 성시경은 축가 콘서트와 소극장 공연, 그리고 ‘8집’을 언급했다. 이제 두 가지가 남았다.

노래하는 성시경을 또 기다린다.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