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도 너무 달라진 韓日 축구 유럽파의 위상

입력 2016-05-18 05:00
프리미어리그 우승 트로피를 든 오카자키 신지 / 사진=AP뉴시스
카가와 신지 / 사진=AP뉴시스
손흥민 / 사진=AP뉴시스
일본 축구는 2014 브라질월드컵을 기점으로 큰 곡선을 그리면서 추락했다. 본선 진출 32개국 중 29위. 승점 1점이라도 확보한 국가들 중에선 꼴찌였다. 홍명보 전 감독이 비난 여론에 휘말려 사퇴할 정도로 졸전을 벌였던 한국보다 2계단 아래에 있었다. 3전 전패한 카메룬, 온두라스, 호주의 바로 위가 일본의 자리였다.

그렇게 암흑기로 들어섰다. 지난해 1월 호주아시안컵 8강에서 아랍에미리트연합(UAE)에 승부차기로 져 일찍 짐을 꾸려 귀국했다. 같은 해 8월 동아시안컵에선 얕잡아봤던 북한에 1대 2로 패배하고 한국, 중국과 비겨 최하위에 머물렀다. 2018 러시아월드컵 아시아 2차 예선 1차전에서는 싱가포르와 득점 없이 비기는 수모까지 당했다.

한때 아시안컵과 아시안게임을 모두 석권하고 ‘탈아입구(脫亞入歐)’를 외쳤던 일본. 그 자신감 넘쳤던 문구는 이제 공허하게 메아리쳐 돌아오고 있다. 하지만 진짜로 아시아를 벗어나 유럽으로 들어간 선수들의 표정은 조금 다르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활약하는 일본의 유럽파들은 한국을 포함한 다른 아시아 출신 선수들보다 성공적으로 2015-2016 시즌을 마감했다.

우승 주역에 리그 베스트 11

독일 분데스리가는 17일 홈페이지를 통해 시즌 베스트 11을 발표했다. 독일, 영국 축구팬들을 대상으로 가장 활약이 좋았던 선수를 설문해 포지션별 최다 득표자를 4-4-2 포메이션으로 나타냈다.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의 일본인 미드필더 카가와 신지는 여기서 1만9616표를 얻어 중앙 미드필더로 이름을 올렸다.

일본 네티즌이 독일, 영국 축구팬으로 위장했거나 도르트문트 팬들이 몰표를 줬을 가능성은 있지만 카가와의 올 시즌 활약은 호평을 받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카가와는 챔피언 바이에른 뮌헨의 일방적인 주도권 속에서 도르트문트의 준우승을 일군 주역 중 한 명이다. 분데스리가 34라운드 중 29경기에 출전해 9골 8어시스트를 작성했다. 도르트문트 전체 득점(82골)의 9분에 1에 해당하는 기록이다.

겹경사다. 일본은 올 시즌 오카자키 신지가 핵심 선수로 뛰었던 레스터시티의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우승으로 잔치 분위기에 흠뻑 빠졌다. 여기서 카가와의 분데스리가 베스트 11 선정 소식까지 전해지면서 잔치 분위기에 불꽃을 터뜨렸다.

오카자키는 프리미어리그에서 5골 0어시스트로 많은 공격포인트를 쌓지 못했다. 하지만 제이미 바디, 리야드 마레즈의 뒤를 받치면서 공격을 원활하게 만든 레스터시티의 ‘윤활유’였다. 오카자키가 페널티박스 안팎을 이리저리 휘저으면서 공간을 만들면 바디나 마레즈가 골을 넣었다.

클라우디오 라니에리 감독이 지난해 7월 레스터시티 사령탑으로 부임하면서 오카자키를 영입한 목적은 그것이었다. 창단 132년 만에 레스터시티의 우승을 일군 숨은 주역이라는 호평을 받으면서 30세의 늦은 나이에 다시 조명을 받았다.

달라도 너무 달라진 韓日 유럽파의 위상

한국의 유럽파는 일본과 상황이 다르다. 한국대표팀의 주축인 유럽파 표정은 어둡다. 소속팀에서 ‘벤치 워머’로 전락했기 때문이다. 득점은커녕 출전기회를 잡는 것조차 어려운 사실상의 ‘개점휴업’ 상태로 꼬박 한 시즌을 보냈다. 박지성(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이영표(토트넘 홋스퍼)를 필두로 한국 선수가 대거 유럽으로 진출했던 2000년대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손흥민(토트넘 홋스퍼)은 지난해 8월 아시아 선수 사상 최고 몸값(400억원)으로 프리미어리그에 입성했다. 하지만 골을 넣지도, 마우리시오 포체티노 감독의 전술에 녹아들지도 못하면서 출전시간은 갈수록 줄었다. 리그에서 28경기를 소화했지만 15경기는 교체 출전이었다. 정규시간 종료를 앞두고 투입돼 고작 5분 안팎을 뛴 경기도 많았다. 그렇게 한 시즌 동안 8골을 넣었다. 리그에선 4골이다.

기성용(스완지시티)의 상황도 녹록치 않다. 프란체스코 귀돌린 감독이 부임한 지난 1월부터 주전 경쟁에서 밀렸고, 뇌진탕 증세와 발목 부상의 악재까지 만났다. 지난 8일 웨스트햄 유나이티드와의 37라운드 원정경기에서 시즌 2호 골을 넣고 화력시위를 벌였지만 그가 오래 비운 팀의 허리엔 이미 잭 코크와 르로이 페르가 자리를 잡았다.

박주호(보루시아 도르트문트), 김진수(호펜하임), 이청용(크리스털 팰리스)의 상황은 심각하다. 박주호와 김진수는 1월부터, 이청용은 3월부터 자취를 감췄다. 모두 부상 없이 주전경쟁에서 밀렸다. 이청용은 폐막을 앞두고 앨런 파듀 감독을 노골적으로 비판해 1회 주급(5000만원)에 해당하는 벌금 폭탄까지 맞았다.

구자철, 홍정호의 꾸준한 활약은 그나마 희망적이다. 두 선수의 존재감은 팀 내에서 뚜렷하다. 구자철은 8골을 넣은 팀 내 최다 득점자다. 홍정호는 주전 센터백으로 자리를 잡았다. 후방을 든든히 지키면서도 2골을 넣었다. 하지만 같은 팀의 지동원은 웃지 못했다. 시즌 초반 2골을 넣었지만 이후부터 백업 요원으로 밀려 출전기회를 많이 얻지 못했다.

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