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참패를 수습할 새 지도부를 출범시키지도 못한 새누리당에서 계파 갈등이 폭발했다. 친박(친박근혜) 주류가 비박(비박근혜)계 위주로 꾸려진 비상대책위와 김용태 혁신위원장을 사실상 ‘비토’하면서다. 여권 일각에선 당 쇄신은커녕 공멸 위기에 직면했다는 관측까지 제기됐다.
◇‘전국위 무산’에 계파갈등 폭발=새누리당은 17일 국회 의원회관 회의실에서 상임전국위원회를 열고 당헌·당규 개정안을 마련한 뒤 전국위원회에서 이를 통과시키려 했다.
그러나 상임전국위가 예정됐던 오후 2시를 훌쩍 넘긴 시간까지도 정족수는 채워지지 않았다. 회의실에선 “언제까지 기다려야 되느냐”는 항의가 터져 나왔다. 결국 홍문표 사무총장 권한대행은 오후 2시40분쯤 “헌정 사상 이런 일은 없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며 “성원이 되지 않아 회의를 진행할 수 없다는 보고를 드릴 수밖에 없는 참으로 한스러운 시간”이라고 말했다. 그가 “어려우면 서로 도와야 되는데 돕지 못하는 이 현실의 아픔을…”이라고 하자 몇몇 참석자들은 “그러니까 왜 청와대를 공격합니까” “청와대 공격하면 혁신이 됩니까”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상임전국위는 전국위 의장과 부의장, 당 소속 국회 상임위원장, 시·도당 위원장 등 52명으로 구성되는데 20여명만 참석했다. 이날 정진석 원내대표를 비대위원장에 임명하고 혁신위 독립성 보장을 위한 당헌·당규 개정안 등을 통과시키려던 전국위원회도 열리지 못했다. 비대위원 임명안을 처리하기 위한 상임전국위 역시 무산됐다. 김영우 의원은 “올스톱 상태”라며 “당원 한 사람으로서 정말 부끄러워서 말을 못할 정도”라고 했다.
◇‘비박 혁신위’ 흔든 친박…분당위기 고조=총선 참패 이후 한 달 넘게 지속된 지도부 공백 사태는 이제 여당의 공멸 위기에 직면하게 됐다. 혁신위원장에 내정됐던 김용태 의원은 상임전국위 무산 직후 사퇴 의사를 밝혔고, 정 원내대표 역시 비대위원장직을 맡지 않겠다는 뜻을 내비친 것으로 알려졌다. 당 관계자는 “정 원내대표가 비대위원장으로 나서기도 어려운 상황이 됐다”며 “다른 대책을 논의해봐야 될 것 같다”고 했다.
당내에선 “친박이 조직적으로 회의를 보이콧한 것”이라는 말도 나왔다. 상임전국위 참석자인 상임위원장 중에선 정두언 의원만 참석했다. 친박계 정우택 정희수 홍문종 의원 등은 불참했다. 한 당직자는 “일부는 갑자기 연락이 안 됐고 일부는 여의도 근처에 와서 회의장엔 안 들어오고 맴돌았다”고 했다.
‘비박계 탈당’으로 비화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김용태 의원은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다”고 했다. 정두언 의원은 “새누리당은 특정인에 대한 충성심이 정체성이다. 국민이 볼 때 보수당이 아니라 독재당”이라며 “이런 패거리집단에 내가 있어야 하는지 심각하게 고민해야겠다”고 했다.
비대위원에 인선됐던 이혜훈 당선인은 “우리가 누구를 밀었는데 왜 한 자리도 안 주느냐면서 기자회견을 했지 않느냐”면서 친박계를 정면 겨냥했다. 또 “계파갈등을 여기서 멈추지 않으면 국민 앞에 다시 한 번 기회를 얻을 수 있을까 절망스런 심정”이라고 했다.
일부 비박계 의원들은 국회 의원회관에 모여 대책을 논의하기도 했다. 김성태 의원은 “새로운 변화를 무산시킨 것은 아무것도 하지 말자는 얘기밖에 안 된다”며 “정말 새누리당이 어디로 갈지 모르겠다”고 했다.
김경택 권지혜 기자 ptyx@kmib.co.kr
새누리당 계파갈등 폭발...친박-비박 공멸 위기
입력 2016-05-17 16:51 수정 2016-05-17 17: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