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은 단신으로 시상식에 참석했다. 지난 16일(현지시간) 저녁 영국 런던의 빅토리아앤앨버트 박물관에서 열린 ‘맨부커 인터내셔널 프라이즈’ 시상식에 한국에서 온 출판사 관계자나 언론은 보이지 않았다. 누구도 한강의 수상을 확신하지 못했다. 한강 혼자서 한국문학의 역사적 순간을 맞이했다. 그것은 한국 작가로는 처음으로 세계 3대 문학상 중 하나를 받아낸 순간이기도 했지만, 한국문학을 두텁게 감싸고 있던 비관론과 패배주의를 깨뜨리는 순간이기도 했다.
한강은 이날 평소처럼 화장도 안 한 얼굴에 수수한 검은색 옷을 입고 시상식장 테이블에 앉았다. 수상작이 발표되자 한강은 옆자리에 앉은 번역가 데버러 스미스와 포옹하며 기쁨을 나눴다. 한강은 수상 직후 연단에 서서 “10년 전쯤에 쓰인 책으로 지금 이런 상을 받게 된 것이 이상하게 느껴진다”면서 “책을 쓰는 것은 내게는 질문하며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한강의 소설들을 해외에 소개하고 있는 이구용 KL매니지먼트 대표는 “국내에선 수상 가능성이 높지 않다고 생각했지만 영국 현지 분위기는 꽤 괜찮았다”면서 “무엇보다 영미권 언론과 평론가들 사이에서 반응이 굉장히 좋았다. 주요 매체들이 ‘채식주의자’를 다 다뤘고, 뉴욕타임스는 두 번이나 보도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영국 서점가에서도 판매 상황이 다른 후보작들보다 좋았다. 최근 런던의 한 대형서점에서는 주간 베스트셀러 2위에 오르기도 했다”고 전했다.
한강의 수상은 어느 날 갑자기 일어난 일도 아니다. 한국문학은 맨부커상 수상을 위한 단계를 차근차근 밟아왔다. 2012년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가 맨부커상의 아시아부문 상이라고 할 수 있는 ‘맨아시아 문학상’을 수상했고, 지난해 이정명의 ‘별을 스치는 바람’이 맨부커 인터내셔널상에 통합된 ‘인디펜던트 포린 픽션 프라이즈’의 후보작 13편 중 하나로 선정되기도 했다.
이 대표는 “국내에서는 한국문학을 폄하하는 목소리가 많지만 글로벌 문학시장에서는 점점 더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면서 “이번 수상은 우리 문학의 경쟁력과 함께 지금 세계문학 시장에서 어느 위치에 있는가를 확인시켜준 것이다”라고 평가했다.
한강은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오르한 파묵(터키)과 오에 겐자부로(일본), 중국 최고의 작가 옌렌커 등 세계적인 작가들과 경쟁해서 맨부커상을 따냈다. 더구나 수상작인 ‘채식주의자’는 영국에 소개된 한강의 첫 작품이다. 한강의 또 다른 소설 ‘소년이 온다’도 영국에서 올해 초 출간돼 호평을 받고 있다.
한강의 맨부커상 수상으로 고은, 황석영 이후 한국이 또 한 명의 노벨문학상 후보 작가를 보유하게 됐다는 평가도 과장이 아니다. 맨부커 인터내셔널상 2009년 수상자인 캐나다의 여성작가 앨리스 먼로는 2013년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2011년 수상자인 미국의 거장 필립 로스도 해마다 유력한 노벨문학상 후보로 꼽히고 있다.
한강의 수상은 국제적으로 한국문학의 힘을 알리는 기회가 될 뿐만 아니라 한국문학이 자신감을 갖고 국제시장으로 나가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또 국내적으로는 한국문학에 대한 저평가를 재고하게 하는 한편, 외국 소설에만 쏠린 독자들의 관심을 돌리게 할 것이란 분석이다. 보이드 톤킨 심사위원장은 “한국은 매우 강력한 소설 문화를 가지고 있고, 수많은 좋은 작가들과 열정적인 문학계를 보유하고 있다”고 한국문학을 높게 평가했다. 한강은 시상식 후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면서 “묵묵히 자신의 글을 쓰고 있는 동료 선후배 작가들을 지켜봐 주시면 좋겠다”며 한국 문학에 대한 관심을 호소했다.
수상 소식이 전해지면서 ‘채식주의자’ 판매가 크게 늘고 있다. 일부 대형 서점들에서는 17일 오후 재고가 바닥난 상태다. 이날 하루에만 ‘채식주의자’가 교보문고에서 3200여부, 예스24에서 5800여부 팔렸다. 한강의 신작 ‘흰’도 다음 달 출간된다. 지난해 ‘한국 문학의 실종’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침체된 한국문학계가 한강의 수상을 계기로 활기를 되찾을지 주목된다.
김남중 기자 njkim@kmib.co.kr
한강, 한국문학에 대한 비관론을 깨뜨리다
입력 2016-05-17 16: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