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유럽에 액화천연가스(LNG)를 본격적으로 수출하면서 유럽 각국이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다. 러시아에 대한 수입의존도가 줄어 ‘에너지 안보’가 향상되는 효과가 기대되기 때문이다. 노르웨이와 알제리 등 기존 천연가스 수출국에도 영향을 줘 가격하락도 예상된다.
미국 외교전문지 포린어페어즈는 15일(현지시간) 미국의 대유럽 천연가스 수출이 2020년까지 연간 800억㎥에 달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미국은 지난달말 포르투갈에 천연가스를 수출하며 유럽 수출을 시작했다. 올해는 영국과 프랑스에도 수출이 예정됐다. 미국은 지난 40년간 석유와 천연가스를 수출하지 않다가 저렴한 비용으로 셰일가스를 생산하면서 유럽으로 수출을 확대할 수 있게 됐다.
유럽은 현재 연간 천연가스 4000억㎥를 소비한다. 이 중 1600억㎥를 러시아에서 수입한다. 그런데 2020년이 되면 미국산 천연가스가 러시아 수출물량의 절반에 달한다.
게다가 호주도 향후 5년 내 천연가스 생산량을 크게 늘릴 계획이다. 호주는 유럽과 멀어 직접 수출은 못해도 중동에서 천연가스를 주로 수입하는 아시아 각국은 가능하다. 이들 나라가 수입선을 호주로 대체할 경우 중동산 및 대서양산 천연가스의 판로가 유럽으로 바뀔 수 있다. 이 역시 유럽의 가격하락 요인이다. 특히 유럽의 제2, 제3 천연가스 공급자인 노르웨이와 알제리는 가격인하 압박을 받을 수밖에 없다.
특히 수입 다변화로 유럽이 천연가스를 볼모로 러시아에 휘둘리는 일도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2009년 1월 러시아는 가격 협상 결렬을 이유로 우크라이나에 대한 천연가스 공급을 2주간 중단했다. 당시 러시아는 유럽으로 가는 공급선을 막지는 않았지만, 러·우크라 갈등이 격화됐을 경우 대부분 우크라이나 영토를 거치는 유럽행 파이프라인도 막힐 수 있는 위기의 순간이었다. 2006년 1월에도 비슷한 일이 생겨 당시 유럽에서 일시적인 에너지난이 발생했다. 하지만 미국이 언제든 유럽으로 천연가스를 수출할 수 있게 됨으로써 러시아의 ‘잘못된 행동’을 막을 억제재가 생길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5년이 후에도 러시아의 대유럽 수출비중이 여전히 커 유럽의 ‘대러 에너지 독립’이 완전히 달성되기 어렵다는 분석도 있다고 포린어페어즈는 지적했다. 특히 미국산 천연가스는 대서양 연안 서유럽 국가를 제외한 내륙이나 동유럽 국가에게는 큰 도움이 되지 못할 수도 있다.
때문에 안보적 이유보다 천연가스 가격인하로 러시아의 경제적 타격이 두드러질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러시아는 현재 유럽에 가스를 팔아 연간 450억 달러(약 53조원)를 벌어들인다. 러시아 관영 스푸트닉통신은 지난 13일 신용평가기관 피치를 인용해 “미국산 천연가스가 세계 곳곳의 가격을 인하시킬까 우려된다”고 보도했다.
손병호 기자 bhs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