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파고가 한국 사회에 던진 충격은 컸다. 지난 3월 이세돌이 알파고에게 완패를 당한 이후 인공지능과 로봇에 대한 다양한 담론이 펼쳐지는 등 관심이 폭발적으로 증대했다.
지난 16일 성남아트센터에서 열린 ‘인간 vs 로봇 피아노 배틀’은 창의성과 감성에 기초한 예술 분야에서 로봇의 모습을 직접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공연 전부터 큰 주목을 모았다. 이 공연은 원래 성남문화재단이 성남 지역 초등학교 6학년 8800명을 대상으로 기획한 것으로 일반 판매를 하지도 않았지만 언론의 취재 열기가 만만치 않았다.
이날 배틀을 펼친 것은 이탈리아의 유명 피아니스트 로베르토 프로세다와 이탈리아 엔지니어 마테오 수지가 2007년 처음 개발해 계속 발전시킨 로봇 테오 트로니코다. 53개의 손가락을 가진 로봇 테오는 1000여곡 이상을 칠 줄 안다. 악보에 쓰여진 대로 오차 없이 정확하게 연주하는 로봇 테오와 작곡가의 의도를 토대로 하되 자신의 해석을 가미해 템포와 강약 등에 변화를 준 프로세다의 대결은 대결이라고 할 것도 없이 프로세다의 일방적인 승리로 끝났다.
“악보대로 연주하는 것이 작곡가에 대한 예의다. 나는 인간보다 빠르고 정확하게 연주할 수 있다”는 테오의 연주는 확실히 정확했지만 단조롭고 평면적이었다. 이에 비해 프로세다는 전문가만 알아들을 수 있는 작은 실수를 했지만 호소력 짙은 연주를 들려줬다. 모차르트 ‘터키 행진곡’과 스카를라티 소나타, 쇼팽의 연습곡 2번 등 1시간 동안 로봇 테오와 프로세다가 나란히 연주한 후 클래식에 친숙하지 않은 초등학생 관객들조차도 프로세다의 연주에 뜨거운 박수를 보낼 정도였다.
사실 이날 공연은 ‘인간 vs 로봇 대결’이라는 선정적인 타이틀을 붙이긴 했지만 초등학생이 클래식에 흥미를 느낄 수 있도록 기획된 교육 프로그램이다. 로봇은 아이들이 클래식을 지루해 하는 것을 막기 위한 일종의 장치였다. 실제로 이날 아이들의 몰입도는 어떤 클래식 공연에서 찾아볼 수 없었을 만큼 대단했다.
피아니스트이자 음악 교육자인 프로세다는 지난 2011년 유튜브에서 우연히 테오를 보고는 엔지지어 수지에게 연락했고, 이듬해 ‘인간 vs 로봇 피아노 배틀’이라는 렉처 퍼포먼스를 선보인 후 지금까지 전세계에서 공연하고 있다. 프로세다는 “기계가 따라올 수 없는 인간 예술의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싶었다. 특히 기계가 재생하는 전자음악에 익숙해지면 미묘한 것의 차이를 짚어내지 못하기 때문에 아이들에게 템포와 강약의 변화에 따라 음악적 분위기가 달라지는 클래식을 들려주고 싶었다”면서 “우리가 듣고 싶은 음악은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연주가 아니라 감정의 소통이 느껴지며 공감이 가는 연주”라고 말했다.
사실 로봇 테오가 기술적으로 그다지 정교하지 않은 로봇이라는 점도 이날 공연이 싱거웠던 큰 이유다. 테오는 악보를 입력한 미디파일을 통해 연주하는 일종의 미디플레이어다. 이날 테오는 “16개 언어가 탑재돼 있다”며 한국어로 말했지만 실제로는 무대 뒤 성우가 한 말이었다. 결국 이날 배틀은 실제 배틀이 아니라 미래에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을 생각해보게 만드는 연습 배틀이었다.
프로세다는 “로봇의 연주는 위험을 감수하지 않는다. 예측 가능하기 때문에 재미가 없다. 예술은 인간만의 분야이기 때문에 실수의 위험도 있지만 그만큼 긴장감이 있고 재미가 있다”면서 “요즘 완벽을 강요하는 사회 속에서 인간의 정체성을 잃지 말아야 한다. 예술은 우리 인간에게 공감 능력의 중요성을 알려준다”고 밝혔다.
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
싱거웠던 '인간vs로봇 피아노 배틀', 예술 분야에서 로봇은 아직 멀었다
입력 2016-05-17 16: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