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하도록 해 달라는 야당의 요구를 거부하면서 정치권은 급속도로 얼어붙고 있다. 여야 3당의 협치(協治) 가능성은 한순간에 사라지고 당분간 국론 분열만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여소야대(與小野大)로 재편된 20대 국회에서 야당의 협력을 끌어내야 하는 여당으로선 곤혹스러운 모습이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은 박승춘 국가보훈처장 해임을 촉구하는 등 등 대여(對與) 공세 모드로 전환하고 있다.
◇野 협력 필요한데…속앓이 하는 與=새누리당은 야당 반발이 거세지자 ‘유감 표명’을 하며 보훈처에 책임을 돌리려는 모양새다. 민경욱 원내대변인은 16일 국회 브리핑에서 “대통령이 국론 분열을 피하는 좋은 방법을 검토하라고 의사를 표명했음에도 불구하고 보훈처가 이런 결정을 내린 것을 납득하기 어렵다”며 “보훈처의 재고를 요청한다”고 했다.
여기에는 야당의 협조 없이는 노동개혁 4법과 규제프리존특별법 등 정부·여당의 중점 법안을 처리할 수 없다는 위기감이 깔려 있다. 당장 20대 국회 원(院) 구성 협상도 난항을 겪을 것으로 예상된다. 당 관계자는 “지금 정국을 냉각시키면 여당이 매우 어려워지기 때문에 재고 요청을 한 것 아니냐”며 “다소 유연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는데 아쉽다”고 말했다.
하지만 여권에서는 기념곡 지정이나 제창 요구를 받아들일 경우 보수단체 등 핵심 지지층까지 반발하면서 국론 분열이 더욱 심화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는 “전향적으로 검토해줬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보훈처장에게 전달한 바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박 보훈처장 해임촉구결의안 채택에 대해 “야당이 하는 것에 대해서 이래라저래라 할 수는 없는데 거기에 동참할 생각은 없다”고 했다.
◇공동전선 구축하며 총공세 나선 2野=야당은 박 보훈처장 해임촉구결의안 채택을 추진할 뿐 아니라 향후 정부·여당의 국정 운영에 협조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보훈처 결정에 국정 최고 결정권자인 박근혜 대통령 의중이 반영돼 있다고 보고 있기 때문이다. 가습기 살균제 사망 사건과 정부의 경제 정책 실패, 기업 구조조정 문제 등을 파고들며 파상 공세를 퍼부을 것으로 관측된다.
더민주는 박 대통령이 지난 13일 청와대 회동에서 가습기 살균제 사망 사건과 관련해 제안한 여·야·정 협의체 구성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혔다. 전날 일부 청와대 참모진 개편에 대해선 총선 참패로 드러난 민의를 외면한 미봉책이라고 비판했다.
우상호 원내대표는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 회의에서 “만일 기념식장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이 제창되지 않는다면 우리는 이 정권에 협조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한다”고 말했다. 또 “차관급 공직자가 어떻게 대통령과 청와대 지시를 거절할 수 있느냐”고 했다.
국민의당 박지원 원내대표는 “박 보훈처장이 자기 손을 떠났다고 한 것은 바로 윗선이 박 대통령이었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라고 했다.
김경택 기자 ptyx@kmib.co.kr
국론 통합 대신 국론 분열 더 조장한 ‘임을 위한 행진곡’ 정국
입력 2016-05-16 16: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