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3 총선 민의를 받들어 만들어진 ‘협치’의 판이 사흘 만에 깨질 위기에 처했다.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이 무산된 탓이다. 지난 13일 회동에서 야권 원내지도부가 요구하고, 대통령이 수긍의 뜻을 밝혔지만 국가보훈처가 ‘국론 분열’을 이유로 제창을 거부해버렸다. 청와대마저 한발 뒤로 물러서면서 기념식을 협치의 발판으로 삼으려던 청·여·야의 구상은 도리어 보혁(保革) 갈등만 부추긴 모양새로 전락하고 말았다.
보훈처는 18일 열리는 기념식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기념공연으로 ‘합창’키로 했다고 16일 밝혔다. 야당과 5·18 관련 단체들의 요구를 공식 거부한 것이다. 야당은 지난 13일 회동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의 행사 기념곡 지정과 제창을 요구했고, 박근혜 대통령은 “국론 분열이 생기지 않는 좋은 방안을 찾아보라고 보훈처에 지시하겠다”며 화답했었다.
하지만 보훈처는 이날 야당의 두 가지 요구를 모두 거부하고 논란을 원점으로 되돌렸다. 보훈처는 “해당 곡을 기념공연에서 합창단이 합창하고, 부르고 싶은 사람은 따라 부르되 그렇지 않은 사람은 하지 않을 수 있도록 ‘참석자 자율의사’를 존중하는 것이 논란을 최소화하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밝혔다. 대통령의 ‘국론 분열’ 발언에 보훈처가 ‘해당 곡을 제창하는 것이야 말로 국론 분열을 일으킬 것’이라고 답한 것이다.
야당은 박승춘 보훈처장 해임촉구결의안까지 꺼내드는 등 격앙된 모습이다. 더불어민주당 우상호 원내대표는 비대위 회의에서 “5·18 당일, 정권이 어떻게 태도를 취하느냐에 따라 국정 운영의 큰 흐름이 바뀔 수 있다는 점을 경고한다”고 말했다. 국민의당 박지원 원내대표도 “대통령께서 협치와 합치를 강조했던 합의문의 잉크도 마르기 전에 이를 찢어버리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청와대는 “보훈처 자체 판단”이라며 한발 물러섰다. 하지만 정치권에선 청와대 의중 없이 보훈처 자체 판단으로 ‘제창 거부’ 결정을 내렸다는 해명 자체가 군색하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해괴한 일” “레임덕 아니냐”는 말까지 나왔다.
새누리당은 난감한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는 기자들과 만나 “제창을 허용하지 않기로 한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라며 “아직 (행사까지) 이틀 남았으니 재고해 주길 바란다는 게 제 입장”이라고 말했다.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 논란이 접점을 찾지 못하면 19대 국회 마무리는 물론 20대 국회도 초반부터 여야 대치 정국이 펼쳐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당장 원 구성 협상부터 진통이 예상된다.
‘임을 위한 행진곡’은 5월 18일이 1997년 정부기념일로 제정된 이후 기념식에서 매년 제창해왔다. 이명박정부 2년차인 2009년부터는 보수단체의 문제제기로 제창하지 못했다. 이후 매년 기념행사 때마다 이 곡의 제창 여부를 두고 갈등이 되풀이됐다.
임성수 기자 joylss@kmib.co.kr
[이슈분석]여야 협치, 국가 보훈처 결정에 사흘만에 중단 소용돌이
입력 2016-05-16 16: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