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온의 영화이야기]<70> 영화 낙수(落穗)

입력 2016-05-16 14:02

세상에는 알아두면 살이 되고 피가 되는 진지하고 중요한 지식과 정보가 넘쳐나지만 때로는 알아도 그만 몰라도 그만인 얘깃거리에 눈이 가고 귀가 쏠리기도 한다. 어차피 사람이 늘 진지할 수만은 없고 보면 있어도 없어도 그만인 가볍고 사소한 것들에 끌리는 수도 있게 마련이다. 그런 의미에서 할리우드 영화와 관련한 잡(雜)지식과 정보들을 소개한다. 작품론이나 연기론, 연출론, 흥행, 이념, 가치관, 예술적 성취 등 영화이야기를 할 때면 빠지지 않는 묵직한 주제들이 아니라 뭘 그런 걸 알 필요가 있나 싶은 것들, 그러나 영화를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재미있어 할 것들이다. ‘영화 낙수(落穗)’라고나 할까.

--B급영화의 지존격인 존 카펜터 감독은 토니 스코트 감독에 앞서 메이저 블록버스터영화 ‘탑 건(1986)’의 연출 제의를 받았으나 자신의 ‘분야’가 아니라선지 거절했다. 그러나 연출 뿐 아니라 영화음악도 작곡하는 등 다재다능한 그는 자신이 연출한 ‘13분서의 습격(Assault on Precinct 13, 1976)’ 영화음악을 단 하루 만에 만들었다.

--로봇 같은 무표정과 나무토막 같은 움직임 등 연기력과는 담을 쌓은 것 같은 ‘액션 맨’ 아놀드 슈워제네거는 그러나 일찍이 연기로 골든 글로브상을 받았다. 1976년 밥 라펠슨이 연출한 ‘Stay Hungry’로 영화부문 남우신인상을 받은 것.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은 ‘조스’, ‘제3종과의 조우’를 연달아 흥행에 성공시킨 후 007영화의 연출을 맡고 싶어 안달하다가 제작사에 정식 오퍼를 넣었으나 보기 좋게 거절당했다. 의기소침해있던 그가 ‘꿩 대신 닭’이라고 만든 게 ‘레이더스’였다.

--‘레이더스’의 주인공 인디애나 존스 역할이 해리슨 포드에 앞서 TV 스타 톰 셀렉에게 먼저 갔으나 TV 시리즈 ‘매그넘 PI’ 탓에 셀렉이 거절한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하지만 실은 셀렉보다 먼저 출연제의를 받은 사람이 있었다. 제프 브리지스. 이때만 해도 인디애나 존스의 이름은 ‘인디애나 스미스’였다.

--TV 시리즈 ‘24’의 잭 바워역으로 잘 알려진 키퍼 서덜랜드에게는 쌍둥이 여동생이 있는데 립스틱을 바른 것만 빼면 똑같이 생겼다(사진).

--마이클 잭슨은 90년대 초 마블 만화사를 인수하려했다. 마블의 슈퍼히어로 중 하나인 스파이더맨을 영화화해 자신이 직접 주연을 맡으려는 속셈이었다. 문 워킹을 하는 스파이더맨이라….

--비슷한 예화는 또 있다. 톨킨의 고전 판타지 ‘반지의 제왕’은 피터 잭슨 이전부터 영화화 시도가 여러 차례 있었는데 비틀스도 그것을 계획했다. 비틀스는 60년대에 스탠리 큐브릭에게 연출을 맡겨 자신들이 모두 출연하는 ‘반지의 제왕’을 만들려고 했으나 결국 포기했다. 만약 현실화됐다면 잭슨판에서는 CG로 처리된 골룸은 누가 맡았을까? 링고 스타?

--키아누 리브스의 실질적인 출세작이랄 수 있는 ‘스피드(1994)’의 주인공 역할은 원래 별 볼일 없던, 따라서 이 영화에서 잘만하면 일약 스타덤에 오를 수 있었던 B급 배우 스티븐 볼드윈(알렉 볼드윈의 동생)이 먼저 제의 받았다. 그러나 볼드윈은 그 역을 거절했다. 왜? 주인공이 ‘다이 하드’의 존 맥클레인(브루스 윌리스)과 너무 흡사하다는 것. 돌이켜보면 땅을 칠 노릇 아닌가.

어떤가. 재미있는가. 그렇다면 다른 것들도 알아보자. 할리우드 리포터라는 잡지에 실린 얘기들이다.

--‘저수지의 개들(1992)’은 퀜틴 타란티노의 ‘놀라운 데뷔작’으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실제 그의 데뷔작은 따로 있다. 1987년에 만든 ‘내 절친의 생일(My Best Friend's Birthday)’. 그러나 이 영화는 화재로 필름의 대부분이 타버렸다.

--ZAZ사단이 재난영화의 고전 ‘에어포트(1970)’를 패러디한 코미디영화 ‘에어플레인(1980)’은 그때까지 진지한 정극배우로 인식돼온 몇몇 배우들의 이미지를 완전히 ‘웃기는 사람’들로 바꿔놓았다. 로버트 스택, 로이드 브리지스, 피터 그레이브스, 그리고 레슬리 닐슨. 특히 닐슨은 그후 ‘총알 탄 사나이’와 ‘못 말리는 ~’ 시리즈를 통해 아예 코미디로 방향을 전환, 한국 관객들에게는 ‘미국판 구봉서’로 자리매김했다.

--데이비드 린 감독은 당초 ‘닥터 지바고(1965)’의 타이틀 롤을 자신이 발굴해 ‘아라비아의 로렌스’를 통해 일약 국제적 스타로 만든 피터 오툴에게 맡기려 했으나 거절당했다. 이에 따라 그는 역시 같은 영화에서 국제 스타로 발돋움한 이집트 배우 오마 샤리프를 대타로 기용했다. 러시아인을 연기한 이집트인은 다행히 성공을 거뒀지만 사실 피터 오툴의 닥터 지바고는 잘 어울리지 않았을 것 같다. 지극히 영국적인 생김새와 풍모의 오툴이 러시아인으로 나오는 건 어색하지 않았을까.

--스탠리 큐브릭의 걸작으로 꼽히는 ‘2001:스페이스 오디세이(1968)’의 세트는 가히 환상적이다. 그러나 큐브릭은 영화제작이 끝난 뒤 세트를 모두 파괴해버렸다. 허접한 싸구려 영화들이 재사용할 수 없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큐브릭은 또 역시 그의 걸작 중 하나인 ‘클락워크 오렌지(1971)’가 개봉됐을 때 폭력성 논란에 휩싸인데 이어 영국 전역에서 영화를 모방한 살인사건이 잇따르자 깜짝 놀라 당장 영화 상영을 전면 자진 중단했다. 한편 ‘샤이닝(1980)’에서 큐브릭은 작가로 나온 잭 니콜슨이 타자기에 종이를 끼우고 글을 쓰는 모습을 여러 차례 보여주었는데 원래 그 글은 영어로 씌어져 있었으나 외국 관객까지 염두에 둔 그는 이 글을 독어, 이탈리아어, 스페인어로도 써서 찍었다.

--마틴 스코시즈와 관련한 일화도 적지 않다. 우선 그는 영화에서 배우들이 쌍욕인 ‘f***’을 가장 많이 사용하게 한 감독으로 꼽힌다. 종전까지 기록은 그의 걸작 중 하나인 ‘좋은 친구들(Goodfellas, 1990)’로 욕이 뱉어진 회수는 약 300번이었으나 이는 2013년에 나온 그의 블랙코미디 ‘월스트리트의 늑대(Wolf of Wall Street)’에 의해 깨졌다. 569회. 또 스코시즈는 초기 걸작인 ‘택시 드라이버(1976)’의 음악을 ‘사이코’의 거장 버나드 허먼에게 의뢰했으나 거절당했다. “자동차 영화는 싫다”는 게 허먼의 ‘기상천외한’ 거절 이유였다. 이와 함께 그는 ‘성난 황소(Raging Bull, 1980)’의 복싱시합 장면을 흑백으로 찍으면서 초콜릿을 피 대신 썼다. 흑백화면에 잘 맞는다며. 덕분에 로버트 드니로는 약 30㎏이나 살이 쪘다고.

--영국의 BBC방송은 냉전이 한창이던 시절 영국이 핵 공격을 받을 경우 살아남은 생존자들을 위해 ‘사운드 오브 뮤직’을 방영할 계획을 세웠다고 한다. 영화가 대단히 밝고 따뜻해서 절망감에 빠진 국민을 위로하고 사기를 높이는 데는 최적이라는 판단 때문이었다고.

--‘슬럼독 밀리어네어(2008)’는 당초 장사가 안 될 것이라는 예측에 따라 극장에 걸리지 못하고 DVD로 직행할 뻔했다가 간신히 살아남았으나 오히려 아카데미 작품상까지 받으면서 흥행에도 대성공을 거뒀다.

--‘에일리언(1979)’의 클라이맥스라 할, 존 허트의 가슴을 뚫고 에일리언이 튀어나오는 장면은 제작진이 출연자들에게 미리 내용을 알려주지 않은 채 촬영했다고 한다. 그래서 화면에 나타난 배우들의 충격과 공포에 질린 표정은 연기가 아니라 진짜라는 것.

--앨런 파큘라 감독은 워싱턴 포스트지의 워터게이트 스캔들 특종보도를 다룬 ‘모두가 대통령의 사람들(All the President’s Men, 1976)’을 찍을 때 사실감을 살리기 위해 WP의 사무실을 실제와 꼭 같이 만들고자 했다. 그래서 그는 WP에서 나온 쓰레기들을 수거해 세트장 사무실 책상 위에 여기저기 늘어놓았다.

--‘주라기 공원(1993)’은 당초 마이클 크라이튼의 원작 소설에 대한 영화화 판권을 놓고 4개 메이저 영화사들이 각각 쟁쟁한 감독들을 내세워 각축을 벌였다. 즉 팀 버튼을 앞세운 워너 브러더스, 조 단테를 내세운 20세기 폭스, 리처드 도너가 나선 콜럼비아, 그리고 스티븐 스필버그가 버틴 파라마운트였는데 스필버그 아닌 다른 감독들, 특히 팀 버튼이 만들었다면 그 주라기 공원은 어땠을지 자못 궁금하기는 하다.

--스필버그는 ‘라이언 일병 구하기(1998)’에서 압권이란 평을 받은 영화 앞부분의 오마하 해변 상륙작전을 재현하면서 병사들의 팔다리가 날아가는 모습을 현실감 있게 만들기 위해 실제 팔다리가 없는 장애인들을 대거 동원했다.

--사이먼과 가펑클의 노래로도 하나의 시대적 아이콘이 된 영화 ‘졸업(1967)’의 ‘로빈슨 부인(Mrs. Robinson)’은 앤 밴크로프트가 멋지게 연기했지만 애당초 후보로 올랐던 이들도 하나같이 밴크로프트 못지않다. 데보라 커, 주디 갈랜드, 라나 터너, 리타 헤이워스, 도리스 데이, 셸리 윈터스, 에바 가드너, 패트리셔 닐, 그리고 잉그리드 버그먼. 당시 중년이었던 당대의 톱스타급 여배우들은 모두 망라돼있다. 누가 역할을 맡았어도 명작 소리 듣기 어렵지 않았을 것 같다.

김상온 (프리랜서 영화라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