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상선과 한진해운의 엇갈린 운명, 이래서 타이밍이 중요

입력 2016-05-14 15:11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는 속담이 경영난에 빠진 국내 해운업계에는 통하지 않는 걸까. 제3의 해운동맹 ‘더 얼라이언스’가 결성되면서 현대상선과 한진해운의 운명이 엇갈렸다. 먼저 자율협약을 개시한 현대상선은 동맹 합류가 유보된 반면 뒤늦게 자율협약에 들어간 한진해운은 동맹에 이름을 올렸다.

새 해운동맹의 주도권을 현재 현대상선이 소속된 G6 동맹이 쥐고 있다는 점에서 당초 현대상선의 잔류 가능성을 높게 보는 시각이 우세했다. 하지만 더 얼라이언스에 합류한 선사는 한진해운이었다.

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을 종합해 보면 현대상선은 올해 초부터 법정관리 가능성이 언급되면서 새 해운동맹 체제에서 일단 배제됐다. 더 얼라이언스가 동맹 결성을 본격적으로 논의하던 시기는 현대상선의 경영부실이 한창 부각되고 있을 때였다. 이에 미래가 불분명해 보였던 현대상선을 제외했다는 얘기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14일 “타이밍이 두 선사의 운명을 가른 것 같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새 해운동맹 구성 논의 시점에 현대상선은 법정관리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었지만 한진해운은 자율협약을 신청하기 전이었다”며 “최근의 상황이 동맹 구성 과정에 반영이 안 된 측면도 있을 것”이라고 했다.

다만 새 해운동맹에서 배제된 결과가 오히려 현대상선 입장에서는 전화위복(轉禍爲福)이 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현대상선은 오는 20일까지가 시한인 용선료(화물선 임대료) 협상에 실패하면 법정관리로 갈 수 밖에 없게 된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현대가 얼라이언스에서 제외됐다는 소식에 눈앞이 캄캄했다”며 “하지만 용선료 협상을 위해서는 어쩌면 잘 된 일”이라고 말했다. 용선료를 낮추는데 비협조적인 선주들에게는 압박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채권단과 업계에 따르면 현대상선이 사용료를 협상중인 화물선은 대형 컨테이너선 5척과 벌크선 17척이다. 컨테이너선주들을 설득하는게 관건이다. 배는 5척이지만 전체 용선료의 70%를 차지한다.

시한이 일주일 남은 용선료 협상은 쉽게 낙관도 비관도 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협상에 정통한 관계자는 “지난주에 한국 언론에서 용선료 협상이 잘 되고 있다고 보도하면서 오히려 상황이 안 좋아졌다”며 “해외의 선주들도 한국 언론에 보도되는 협상 내용을 살펴보면서 대응하고 있어 쉽지 않다”고 전했다. 그는 “언론에서 협상이 잘 된다고 보도하면 용선료를 안 깎으려고 하고, 몇퍼센트나 깎았다고 숫자라도 보도되면 선주들간에 입장이 엇갈리면서 다시 설득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고 토로했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이 지난달 26일 제시한 용선료 협상 시한은 ‘5월 중순’이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해운업 구조조정의 핵심 포인트는 용선료 협상입니다. 왜 협상해야 하냐. 잘 아시겠습니다만 지금 용선료를 시세 보다 4~5배씩 주고 있는 상황입니다. 용선 계약이 최장 2026년까지 돼 있어서 지원해야 될 금액도 5조원이 넘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기업이 존속할 수 없습니다. 기업 상황이 나빠지고 구조조정이 지연되는 상황에서 용선료 협상을 마냥 기다릴 수 없습니다. 그 시한은 5월 중순 경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때까지 협상안을 내지 않으면 (현대상선의 생존에) 동의하지 않는 거로 하고 후속조치 들어가겠다고 하는 시한을 제시했습니다. 선주들은 용선료를 낮추는 대신 채권단이 지급 보증해달라고 요구하는데, 그건 결코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기자분들도 이 점은 꼭 좀 분명하게 보도해주시기 바랍니다. 용선료 협상과 사채권자 조정이 안되면 채권단이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은 사실상 법정관리 뿐입니다.”

하지만 협상이 시한 내에 타결될 수 있을지 여전히 불투명하다. 지금까지의 협상도 쉽지 않았지만, 마지막 시한을 앞두고 선주들 간에도 눈치 보기와 치킨게임 등 치열한 줄다리기가 벌어질 수 있다. 컨테이너선 선주들은 선박펀드 등 금융권이 아니라 해운업계의 상황에 정통한 이들이라고 한다. 선주들의 결단에 협상이 달려있기 때문에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현대상선이 동맹에서 제외된 것이 선주들에게 압박이 될 수는 있다. 현대상선이 최종적으로 법정관리에 들어가면, 선주들은 지금의 절반도 안되는 헐값에 배를 빌려줄 곳을 다시 찾아야 한다.

일단 더 얼라이언스는 현대상선의 경영이 정상화되면 해운동맹에 참여하는 것을 긍정적으로 검토할 수 있다는 분위기인 것으로 알려졌다. 20일이라는 시한이 연장될 가능성도 있다.

유성열 김지방 기자 nukuv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