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을 찾아 교수직도 팽개치고 45세이던 1990년 제주로 내려갔던 동양화가 이왈종(71) 작가가 더 알록달록해진 ‘현대판 행복도’를 들고 4년 만에 서울에서 개인전을 갖고 있다.
서울 종로구 삼청로 현대화랑에서 여는 ‘제주 생활의 중도’전이다. 중앙대 회화과 출신으로 1979년부터 추계예술대교수로 재직하던 그는 작업을 제대로 할 수 없는 보직 교수 생활에 넌더리가 났다. 1년만 쉬자며 안식년을 얻어 내려갔던 제주에 아주 정착했다. 제주의 풍광과 공기, 여유가 없었다면 지금의 그림들은 탄생하지 못했을 것이다.
왜 ‘중도’인가. 12일 전시장에서 만난 이 화백에게 물었다. “평범하게 사는 거, 그거 어렵습니다. 나이 들어 더 실감합니다. 뉴스 한 번 보세요. 못된 짓하고 철창신세 지는 사람들, 얼마나 많은가요. 다 과욕에서 비롯된 것이지요.”
그의 작품은 늘 그렇듯 서민들의 장수와 행복에 대한 염원을 담았던 옛 민화의 현대 버전을 보는 느낌이다. 소박한 집에서 밥상을 마주하고 앉은 노부부, 개와 고양이, 새, 사슴, 연못, 풀, 자동차 등 길상을 상징하는 아이콘들이 삽화처럼 평면적으로 배치됐다. 작품마다 화사하게 매화가 피었다.
또 다른 대표작인 한가로이 골프를 즐기는 노인들의 모습을 담은 작품도 대거 나왔다. 인물들의 포즈가 해학적이다. 공이 바다로 날아가 어쩔 줄 몰라하는 남자에게 채를 바꿔주러 급하게 뛰어가는 캐디, 공이 벙커에 빠져 난감해 하는 이를 내심 좋아하며 지켜보는 친구의 표정이라니. 1998년 제주의 한 골프장에서 의뢰가 들어와 시작한 ‘골프장 행복도’는 곳곳의 클럽하우스에 걸려 있는 또 하나의 대표 브랜드가 됐다. ‘노년에 골프 칠 수 있는 팔자만 되라’는 한국 사회의 덕담은 건강과 부, 사교를 누리고 싶은 욕망이 집약된 것이 아닌가.
소재는 이전과 크게 달라진 것이 없지만 색이 더 강해지고 환해졌다. 동백, 밀감, 수선화 등 제주 특유의 식물들은 낙원 같은 분위기를 돋우는 장치들이다.
2013년 서귀포 정방폭포 초입에 ‘왈종미술관을 건립했다. “기부야말로 행복해지는 길”이라며 1년에 3000만원씩 기부한다. ‘안분자족’의 메시지를 던지는 현대판 이왈종 행복도는 6월 12일까지 볼 수 있다(02-2287-3536).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
더 화사해진 이왈종의 '제주 행복도'
입력 2016-05-13 15: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