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머런 총리는 12일 런던에서 열리는 반부패 정상회담을 앞두고 전날 버킹엄궁에서 열린 리셉션에서 엘리자베스 2세 여왕에게 “몇몇 환상적으로 부패한 나라 정상들이 영국으로 옵니다”라고 말했다. 나이지리아의 무함마드 부하리 대통령과 아프가니스탄의 아슈라프 가니 대통령의 참석을 언급하며 이같이 표현한 것이다. 이 발언은 당시 리셉션 장소에 부착돼있던 방송사의 소형 마이크에 잡히면서 만천하에 공개됐다.
이에 대해 부하리 나이지리아 대통령은 “사과할 필요 없다”며 “그보다도 영국 은행에 잠자고 있는 나이지리아의 자산(부패로 빼돌려진 자산을 의미)을 되찾는 데 관심이 있다”고 비교적 차분한 반응을 보였다.
런던 주재 아프간 대사관 관계자도 BBC 취재에 “부패 척결은 가니 대통령의 가장 큰 숙원”이라며 “이미 눈여겨볼 만한 조치들이 취해졌다”며 캐머런 총리의 실언에 대해서는 특별히 언급하지 않았다. 지난해 기준 국제투명성기구의 부패인식지수에 따르면 아프간은 전체 168개국 가운데 166위, 나이지리아는 136위를 기록했다.
그렇지만 회의를 주관한 영국 총리가 특정 국가를 비하하는 발언을 했다는 ‘외교적 결례’ 논란은 잦아들지는 않았다. 이튿날 의회에서 보수당의 필립 데이비스 의원은 캐머런 총리에게 “총리가 부패하다고 보는 나라에 원조를 멈추지 않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묻는 등 캐머런 총리는 진땀을 흘려야 했다. 그런 뒤에야 뒤늦게 “해당 국가들 정상들이 부패와 열심히 싸우고 있다”고 한 것이다.
반부패 정상회의는 뇌물 수수와 돈 세탁 등의 부정행위를 근절하기 위한 취지로 각국 정치인과 관료, 기업인들이 모여 대책을 논의하는 국제회의로 2년 간격으로 열린다. 1983년 미국 워싱턴DC에서 처음 열렸으며, 2003년 서울에서도 한 차례 개최됐었다.
이종선 기자 remembe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