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든타임. 사고가 일어났을 때 인명을 구조하기 위한 초반 금쪽같은 시간을 말하는 용어입니다. ‘응급처치법’에서 심폐소생술(CPR)은 상황 발생 후 10분 내에 시행돼야 합니다. 항공사의 경우에는 ‘90초 룰’이 있습니다. 항공 사고로 비상 상황이 발생했을 때 90초 내에 승객들을 기내에서 탈출시켜야 함을 의미합니다. 지진으로 사상자가 발생했을 때 실종자 구조를 위한 골든타임은 72시간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지진 발생 후 72시간 이내에 구조되지 못하면 생존 가능성이 현저하게 줄어들게 된다는 것입니다.
지난 6일, 최악의 지진이 일어난 지 20일 만에 찾아 간 에콰도르 페데르날레스의 모습은 그야말로 참혹했습니다. 이전 모습을 짐작할 수도 없을 만큼 산산 조각난 건물들은 지진규모 ‘7.8’이란 숫자가 얼마나 강한 힘으로 이 땅을 뒤흔들었는지 짐작케 했습니다. 전파가 불안정해 꺼졌다 켜지길 반복하는 텔레비전에선 디에고 푸엔테스 에콰도르 내무차관이 “실종자 명단에 오른 2000여명 가운데 현재까지 찾은 사람은 300여명 정도”라는 안타까운 소식을 전하고 있었습니다. 골든타임의 경계선은 이미 생존보다는 사망으로 넘어가 있었습니다. 절망이 이 땅을 짓누르고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재난 현장 곳곳에서 만난 에콰도르인들의 모습에선 ‘비관’ ‘슬픔’ ‘절망’보다는 ‘기대’ ‘위로’ ‘희망’이 깊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이번 지진으로 건물의 90%가 무너진 카를로스 마리아 초등학교의 한 교실을 찾아갔습니다. 나비가 평화롭게 동산을 날아다니던 벽화는 지진으로 큰 구멍이 뚫려 귀퉁이가 찢어진 동화책 같았습니다. 그 구멍 사이로 한 소년이 보였습니다.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시멘트 담장 아래서 맨발로 그림책을 보던 소년은 인기척을 느끼곤 경계의 눈빛을 보냈습니다. 기자가 주머니에서 초콜릿 과자를 꺼내며 웃어보이자 그제야 손을 잡고 교실 밖으로 나왔습니다. 이 학교 2학년에 다니는 피를로 메르도(8)군은 이번 지진으로 세 살 터울의 형을 잃었습니다. 형과 함께 공부하던 곳에 오면 그 흔적이라도 찾을 수 있을 거라 믿는 듯 했습니다. 그림책을 내려다보는 소년의 모습이 더 슬프게 보였습니다. 메르도 군은 “자기가 못 그리는 그림을 형은 마술처럼 그려줬다”며 형을 추억했습니다. 20일 전 갑작스런 지진이 형을 빼앗아간 뒤 형의 죽음을 받아들이기까지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을지 짐작조차 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여덟 살 소년에게 극단적인 비관은 없었습니다. 소년은 오히려 기자를 보며 웃어보였습니다.
“제 꿈은 형처럼 그림을 잘 그리는 화가가 되는 거예요. 그래서 새로 지어질 학교에 멋진 벽화를 그려주고 싶어요.”
육중한 포클레인이 건물을 헐어내는 현장 옆에선 아우실리아 로드리게스(49·여)씨가 삶의 터전이 무너져 내리는 모습을 담담하게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로드리게스씨는 6명의 가족과 함께 인근 친구 집에 머물고 있다고 했습니다. “음식이 더 필요하다”며 “막둥이 아들의 자전거가 부서져 속상하다”고 했습니다. 그녀의 눈가가 그렁그렁해질 때쯤 한 남자가 다가와 조용히 그녀를 안았습니다. 첫째 아들인 루이스 멘도사(22)씨였습니다. 멘도사씨는 어머니의 볼에 입을 맞추었습니다. 그리고 얘기했습니다. “어머니. 하늘이 우리에게 새집을 주시려고 헌집을 가져간 거예요. 저랑 같이 더 멋진 집에서 살아야죠.” 어머니는 아들을 바라보며 웃었습니다. 아들도 따라 웃었습니다. 더 이상 시멘트를 뚫고 삐져나온 철근들이 흉물스러워 보이지 않았습니다. 가시가 많아도 아름다운 장미꽃 같아 보였습니다.
학교가 무너졌다고 해서 아이들의 꿈이 무너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집이 무너졌다고 해서 가족의 사랑이 무너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악취가 진동하는 천막 피난처에서도 생(生)에 대한 ‘감사’로 삶을 지탱하고 있는 이재민들, 무너진 건물의 잔해로 벽돌쌓기 놀이를 하며 천진난만하게 자기만의 집을 짓고 있는 어린이들. 이들에겐 여전히 에콰도르의 골든타임이 ‘진행 중’이었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전 세계가 에콰도르 지진 피해지역의 재건을 응원하고 있습니다. 지구 반대편에 자리 잡은 ‘강도당한 이웃’을 기억하고 응원의 손길을 전할 때 ‘희망’의 씨앗은 더 깊이 뿌리내릴 수 있을 겁니다. 에콰도르의 골든타임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
[관련기사/많이 본 기사 보기]
[미션쿡]'에콰도르의 골든타임은 끝나지 않았다'
입력 2016-05-11 17: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