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에콰도르 지진피해 현장을 가다

입력 2016-05-11 09:36 수정 2016-05-11 15:37
규모 7.8의 강진으로 건물의 80%가 무너진 에콰도르 페데르날레스시. 도로 위에 완파된 차량이 방치돼 있다.
규모 7.8의 강진으로 무너져내린 3층짜리 건물. 이번 지진으로 에콰도르 페데르날레스시는 건물의 80%가 피해를 입었다.
에콰도르 페데르날레스시 초레아 마을에 마련된 천막 피난촌. 지진으로 삶의 터전을 잃은 이재민 60여 가정이 머물고 있다.
지진으로 무너진 주택 내부에 산산 조각난 시멘트와 철근 사이로 유아용 신발이 뒹굴고 있다.
한국교회봉사단 월드디아코니아 실사단과 에콰도르 한인선교사연합회가 6일 페데르날레스시 초레아 마을에서 지진으로 피해를 입은 이재민들에게 구호물품을 나눠주고 있다.
6일 오전 6시(현지시간) 15인승 승합차 한 대와 구호물품을 실은 2.5t 트럭 한 대가 잔뜩 안개를 머금은 안데스 산맥을 뚫고 북서쪽을 향했다. 에콰도르의 수도 키토로부터 280여㎞ 떨어진 마나바주 페데르날레스시. 이곳은 지난달 16일 규모 7.8의 강진으로 700여 명의 목숨을 앗아간 지진의 진앙지로부터 불과 14㎞ 떨어진 지역이다. 기자는 한국교회봉사단(대표회장 김삼환 목사), 에콰도르 한인선교사연합회(회장 남상태 선교사)와 함께 이곳을 찾아갔다.

◇참혹한 지진피해 현장= 키토에서 페데르날레스로 향하는 길은 오직 하나. 안데스 산맥을 동서로 가로지르는 것이다. 해발 2850m의 키토를 출발한 차량은 평균 4000m가 넘는 산허리를 휘감으며 오르내리기를 반복했다. 길모퉁이에는 사람 몸통만한 낙석들이 위태롭게 나뒹굴었다. 산사태로 산중턱의 토사가 무너진 곳엔 부러진 나무들 사이로 바위의 단층이 드러났다. 도로 위에서 페데르날레스 표지판을 만난 건 키토를 출발한 지 6시간 만이었다. 반가움도 잠시, 서서히 드러나는 참혹한 마을의 모습에 입을 다물 수 없었다. 인도와 차도의 경계가 사라진 거리 좌우로 늘어선 건물들은 만신창이였다. 이곳에는 첫 강진 후 20일 동안 730여 차례의 여진이 발생했다.

손자와 함께 앙상하게 뼈대만 남은 집을 찾아 온 루즈 클라라(71·여)씨는 “평생 이런 지진은 처음이었다”며 “다급히 가족들만 데리고 빠져나오느라 집기들은 하나도 못 챙겼는데 20일 만에 와보니 건질 수 있는 게 하나도 없다”며 울먹였다. 손자 잘레이 호세(8)군은 장난감 상자가 있던 자기 방을 찾아가더니 힘없이 주저앉고 말았다. 임시 피난처로 걸음을 옮기는 할머니와 손자의 뒷모습이 애처로웠다.

옆 골목에선 포클레인이 4층짜리 건물을 헐어내고 있었다. 30여m 떨어진 곳에서 그 모습을 바라보던 주민들은 탄식을 쏟아냈다. 인구 5만5000명의 페데르날레스시는 건물의 80%가 피해를 입었다.

도심에서 차량으로 5분 거리에 있는 초레아 마을 초입에는 나무기둥을 사방으로 박고 엉성하게 천과 비닐을 덮어 둔 천막촌이 만들어졌다. 해안가에 거주하다 터전을 잃은 이주민 60여 가정이 이곳에서 움츠린 채 삶을 지탱하고 있었다.

천막 안에는 잔해 속에서 가져 온 카펫과 매트가 어지럽게 깔려있었다. 몇 톨만 남아 바닥을 드러낸 쌀 포대자루와 곳곳에 멍이 든 감자, 당근, 구겨져 널브러져 있는 식수 PET병이 이재민들의 식량 사정을 말해주고 있었다.

다섯 식구가 이곳으로 피신해 온 마리아 에스메랄다(46·여)씨는 “주민들이 천막촌 주변에서 대소변을 해결하고 있어 전염병 위험이 크다”며 “간이 화장실을 설치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에서 식량을 배급하고 있지만 턱없이 부족하다. 정부가 임시 주택을 지어줘야 하는데 아직 조사도 나오지 않았다”며 도움을 호소했다.

천막촌 옆으로 담장이 무너진 채 철제 문 만 외롭게 버티고 있는 카를로스 마리아 초등학교가 보였다. 부서진 책상과 의자, 깨진 벽돌과 망가진 컴퓨터들이 뒤죽박죽 엉켜 격렬한 시가전을 치른 전장을 방불케 했다.

◇한인선교사회, 한국교회와 함께 긴급구호=한국 교민들은 이번 지진으로 큰 피해를 입지 않았지만 한인선교사회 등은 구호에 적극 앞장서고 있다. 한인선교사연합회장 남상태(키토한인교회) 목사는 “이 땅에 터를 잡고 사역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이웃으로서 혜택을 받고 있는 것”이라며 “강도당한 이웃을 위해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하는 것 뿐”이라고 말했다. 꾸망 따블로(초레라교회) 목사는 “이방인으로만 인식했던 한국인들이 도움을 준 것에 대해 구호 현장에서도 반응이 뜨겁다”며 “에콰도르 복음화에도 귀한 밑거름이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구호단은 이날 초레라 마을과 뿐타 블랑카 마을에서 이재민 300가정에게 구호품을 전달했다. 네 살 배기 딸과 현장을 찾은 에세니아 아빌라(35·여)씨는 “며칠 전에도 한국교회 선교사들을 통해 모기장과 생필품들을 전달받아 큰 힘이 됐다”며 “솔직히 한국이 어디에 있는 나라인지 몰랐었는데 이번 지진을 겪으면서 평생 잊지 못할 사랑을 지구 반대편의 한국인에게 받은 것 같다”고 감사를 전했다.

초레라교회 옆에서 천막생활을 하고 있던 메르타 칸칭그레(76·여)씨는 “하나님께서 지금 이 순간에도 필요를 채워주고 계심을 믿는다”면서 “이 땅이 회복될 수 있도록 기도해달라”며 기자의 손을 잡았다.

월드디아코니아 사업팀장 정병화 목사는 “재난지역의 주민들이 자신의 고통을 숙명처럼 받아들이는 순수하지만 무기력한 모습이 안타깝다”며 “큰 결핍에 처한 이들에게 새로운 삶을 일구어갈 희망을 줄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구호 수요는 끝이 없지만 공급은 턱없이 모자라다. 지진 직후 한인선교사연합회에서 파송교회와 기관 등을 통해 구호 후원을 요청하고 있지만 현재까지 모금된 구호금은 4000달러 정도다. 연합회는 정부의 중장기 복구 계획을 모니터링하는 한편 한교봉과 협력해 긴급구호 및 복구지원에 속도를 높여갈 방침이다.

한교봉 사무총장 천영철 목사는 “이번 구호 및 실사 결과를 토대로 ‘이재민 임시가옥 건축’ ‘위생시설 지원’ ‘지역 센터 역할을 위한 교회재건 지원’ 등의 사업을 펼쳐나갈 것”이라며 한국교회의 관심과 후원을 요청했다(02-747-1225). 글·사진 페데르날레스(에콰도르)=

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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