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정 많던 ‘문학 판사’ 어쩌다 피의자 전락했을까

입력 2016-05-11 00:17
사진=뉴시스

정운호(51) 네이처리퍼블릭 대표 사건 관련 수임 비리 혐의로 9일 체포된 최유정(46·여) 변호사는 2년 전까지 탄탄한 경력의 중견 판사였다. 현직 판사 시절 인정 많고 글솜씨 좋은 법관이란 평을 들었다. 그런 그가 어떡하다 한순간에 브로커 변호사로 전락했을까.

최 변호사는 2014년 2월 전주지법 군산지원 부장판사를 끝으로 법복을 벗었다. 가족 병 수발과 부부 문제 등 가정 상황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관둔다고 주변에 말했다고 한다. 그는 한 대형 로펌에 영입됐지만 보수 등 문제로 갈등을 겪다가 퇴사해 같은 해 12월 서울 서초구 법원청사 앞에 개인사무실을 냈다.

최 변호사는 2007년 수원지법에서 근무할 때 대법원이 발간하는 월간지가 선정하는 문예상 대상을 수상한 적이 있다. 법조 전문지에 칼럼도 기고하는 ‘문학 판사’였다.

법원 내부에서는 지난해 3, 4월쯤 이숨투자자문(이숨) 이사 직함으로 활동하던 브로커 이모(44)씨와 교류를 시작한 것이 화근이 됐다고 보는 시각이 많다. 최 변호사와 함께 체포된 사무장 권모씨도 이씨가 앉힌 그의 측근이다.

최 변호사는 지난해 7월 숱한 피해자를 낳은 이숨에 1억원을 투자해 2개월 간 1500여만원의 수익을 거둔 기록이 있다. 8월에는 이숨 운영자 송모(40)씨의 ‘인베스트 사기 사건’ 항소심 변론을 맡았다. 1심에서 징역 4년의 실형이 나왔던 송씨는 2심에서 징역 3년, 집행유예 4년으로 감형됐다. 그러나 1300억원대 이숨 사기 사건으로 석방 당일 체포돼 1심에서 징역 13년이 선고됐다. 검찰은 최근 수감 중인 송씨를 불러 이 두 건의 수임료로 수십억원을 최 변호사에게 줬다는 진술을 받았다. 이씨는 이른바 허위 신용카드 거래로 45억원을 유통시킨 혐의로 기소돼 2014년 9월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전력이 있다.

지난달 12일 최 변호사와 정 대표의 ‘구치소 폭행 논란’이 벌어졌을 때 최 변호사를 대신해 사건을 강남경찰서에 고소한 것도 이씨다. 그는 당시 자신과 최 변호사가 사실혼 관계라고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고소장 접수로 폭행 건을 사건화해 정 대표의 수임료(20억원) 반환 요구를 무마하려는 의도였을 수 있다.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부장검사 이원석)는 최 변호사의 변호사법 위반 행위 배경에 이씨가 있는 것으로 보고 그의 행적을 쫓고 있다. 최 변호사에 대해서는 11일 구속영장을 청구할 방침이다.

검찰은 10일 정 대표의 경찰·검찰 수사와 1심 재판 때 변호를 한 홍모(57) 변호사 사무실과 자택을 압수수색했다. 최 변호사를 압수수색한 지 일주일이 지난 시점이다. 검찰 핵심 요직을 거쳐 검사장까지 지낸 홍 변호사는 ‘사건을 싹쓸이 해 간다’는 말이 나올 정도의 대표적 전관 변호사다. 국민건강보험공단 자료에 따르면 2013년 월 평균소득 7억6000여만원, 연간 91억2000여만원을 벌어 법조인 중 소득 1위를 기록했다.

검찰은 서울지방변호사회와 법조윤리위원회, 세무서 등에서 확보한 자료를 분석해 홍 변호사의 탈세 혐의를 포착했다. 홍 변호사는 피의자로 입건된 상태다. 검찰은 홍 변호사가 브로커 역할을 하는 ‘외근 사무장’을 통해 이른바 ‘몰래 변론’을 한 뒤 소득을 누락 신고한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검찰은 홍 변호사가 정 대표 수사·재판 과정에서 후배 검사들에게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했는지도 수사할 계획이다.

지호일 양민철 기자 blue51@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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