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한 대학을 졸업한 뒤 10여년간 고시공부에 매달려온 문모(43)씨가 누나(47)와 함께 아버지(78)가 사는 광주 문흥동 모 아파트를 찾은 것은 어버이날인 8일 새벽 2시30분쯤. 하지만 문씨 남매가 평소 소유권에 눈독을 들여온 아버지의 아파트는 텅 비어 있었다.
20년 가까이 왕래를 하지 않고 살아온 아버지를 기다리던 문씨 남매는 2009년 어머니와 사별한 이후 혼자 살아온 아버지의 행방을 직감했다. 수년전 노인복지시설에서 만나 교제 중인 A씨(75·여)의 집이라고 여긴 것이다. 팔순을 앞둔 아버지의 황혼연애는 말리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40대의 적잖은 나이에 미혼에다 생활비를 걱정하는 형편에서 ‘유산’의 전부나 다름없는 아버지 아파트를 A씨에게 빼앗길지 모른다는 불안감은 떨칠 수 없었다. 아버지 역시 기초생활 수급자로 사정이 넉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문씨 남매는 오전 8시쯤 A씨의 집에서 이틀 만에 돌아온 아버지와 아파트 상속을 둘러싼 ‘최후의 협상’을 벌였고 이마저 거절당하자 끔찍한 패륜 범죄를 저질렀다. 미리 준비한 흉기로 아버지를 수차례 찔러 숨지게 하고 대형 고무통에 사체를 넣어둔 채 아파트를 빠져나온 것이다.
완전범죄를 노린 이들 남매는 사체부패에 따른 냄새의 유출을 막기 위해 아버지 사체가 담긴 고무통에 락스를 뿌리고 이불을 겹겹이 쌓는 인면수심의 만행도 마다하지 않았다. 어버이의 날을 기념하는 카네이션이 달려 있어야할 아버지의 가슴에는 예리한 흉기가 그대로 꽂혀 있었다.
‘황금만능주의’가 혈육의 정마저 무참히 짓밟은 어버이날의 비극이다. 문씨 남매는 범행 이틀 전인 지난 6일 광주의 한 마트에서 범행에 사용할 도구를 사전에 구입하고 공항과 여행사에 해외출국 절차까지 문의하는 등 치밀하게 범행을 준비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삿짐센터에 전화를 걸어 이사를 예약한 뒤 월세를 들어 사는 오피스텔 주인에게는 보증금을 돌려달라는 문자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
광주 북부경찰서는 10일 잔혹하게 아버지를 살해한 혐의가 드러난 문씨 남매에 대해 존속살인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하기로 했다. 경찰은 문씨 남매가 아버지에 대한 분노와 증오심만 표출한 채 구체적 범행 동기 등에 대해 묵비권을 행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광주=장선욱 기자 swjang@kmib.co.kr
40대 패륜 남매, 어버이의 날에 아버지 가슴에 칼 꽂았다
입력 2016-05-10 16: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