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유럽에서 발레 안무가로 맹활약하는 허용순 "주변에서 소재를 찾는다"

입력 2016-05-10 16:04 수정 2016-05-11 09:31
안무가 허용순이 10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연습실에서 자신의 안무 스타일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서영희 기자

최근 한국 발레계는 무용수들의 잇단 해외 콩쿠르 수상과 유명 발레단 입단 소식이 이어지고 있다. 이에 비해 발레 발전의 또다른 축인 재능있는 안무가들의 등장은 더딘 편이다. 현재 해외 발레단에서 꾸준히 안무를 의뢰받고 작품을 지속적으로 공연하는 안무가는 독일에 거주하는 허용순(52)이 유일하다. 그가 제6회 대한민국발레축제(13~29일 예술의전당)의 초청으로 자신의 작품 ‘엣지 오브 서클(The Edge of the Circle)’과 ‘콘트라스트(Contrast)’ 2편을 24~25일 발레리나 김주원, 황혜민 등 국내 무용수들과 선보일 예정이다.

문훈숙 유니버설발레단 단장, 김인희 서울발레씨어터 단장, 강수진 국립발레단 단장 등과 함께 국제 무대 진출 1세대인 허용순은 선화예고 재학 중 모나코왕립발레학교로 유학을 떠났다. 학교 졸업 후 오디션을 통해 독일 프랑크푸르트발레단에 입단한 뒤 스위스 취리히발레단과 바젤발레단 을 거쳐 독일 뒤셀도르프발레단 수석무용수 및 발레마스터(지도위원)로 활약했다. 그는 스웨덴 출신 거장 마츠 에크가 안무한 유명 작품인 ‘카르멘’에서 동양 출신으로 처음 타이틀롤을 맡기도 했다.

현재 안무가 겸 뒤셀도르프발레학교 교사로 활동하는 그는 “클래식발레보다는 모던발레를 좋아했기 때문에 당시 발레학교 선생님이 유럽 발레단 입단을 권했다. 운좋게도 프랑크푸르트발레단 오디션에 바로 합격했다”면서 “이후 유럽의 여러 발레단에서 오랫동안 활약한 덕분에 마츠 에크, 윌리엄 포사이스, 우베 숄츠 등 좋은 안무가들과 계속 작업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들의 작품에 출연하면서 자연스럽게 안무를 배울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고 밝혔다.

그는 취리히발레단과 바젤발레단 시절 발레단의 안무가 육성 프로그램에서 소품을 선보여 호평을 받았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안무가로 발을 내딛은 것은 2001년 뒤셀도르프발레단의 발레마스터로 활동하면서부터다. 당시 주변의 권유로 발레단의 안무가 육성 프로그램에 선보였던 작품이 2년 연속 호평을 받은 뒤 해외에서도 팔리는가 하면 그에게 직접 안무 요청이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그는 “내가 안무가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좋은 안무가가 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관객과 평단이 내 작품을 좋아하는 것은 물론 다른 발레단에도 작품이 팔리면서 안무가로서 나서게 됐다”면서 “지금도 늘 안무가로서 부족함을 느끼기 때문에 끊임없이 배우는 자세로 작품을 만들고 있다. 다행히 예전보다 움직임이 자유로워졌고 춤 언어도 늘어났다”고 자평했다.

그가 지금까지 안무한 작품은 모두 33편이며 독일과 한국은 물론 미국, 호주, 오스트리아, 스위스, 터키 등에서 자주 공연됐다. 고전적인 작품부터 추상적인 작품까지 스펙트럼이 다양하다. ‘로미오와 줄리엣’ ‘카르멘’ ‘불새’ ‘카르미나 부라나’ 등 전막발레도 4편이나 된다. 그는 자신의 작품들이 해외 발레단의 러브콜을 꾸준히 받는 이유에 대해 “요즘 안무가들이 움직임의 테크닉을 중시하는 추상적인 작품을 많이 만드는데 비해 내 작품은 대체로 스토리가 있어서 관객들이 감정을 이입하기가 쉽다. 또 내가 무용수에 맞춰 매번 작품을 수정하는 등 무용수와 작품의 일체감을 추구하는 것도 영향이 있을 것 같다”고 답했다.

그는 한국 발레계의 후배들로부터 안무 방법에 대한 질문을 많이 받는 편이다. 이에 대한 그의 대답은 정해져 있다. 그는 “음악에서 영감을 받기 때문에 다양한 종류의 음악을 듣는 것과 함께 주변에서 작품 소재를 찾을 것을 권한다. 자신이 잘 알고 있는 소재를 춤으로 표현할 때 관객에게 전달하는 안무가의 메시지가 뚜렷해진다”고 말했다.

이번에 그가 선보이는 2개의 작품 가운데 <콘트라스트>는 미국 툴사 발레단에서 2014년 초연된 것으로 공항에서 스쳐지나간 사람들의 모습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다. 그리고 슈투트가르트발레단 수석 무용수 출신으로 독일 칼스루에발레단 예술감독인 비르기트 카일의 위촉을 받아 2015년 만든 <엣지 오브 써클>은 카일의 평소 이미지와 인간관계에서 모티브를 얻었다.

한국 발레계에 대한 조언을 묻는 질문에 그는 “한국 무용수들의 기량이 정말 뛰어난 편이다. 다만 춤에 대한 욕심이 있다면 해외 발레단에서 활약할 기회를 가지길 권하고 싶다. 특히 안무에 대한 꿈이 있으면 유럽의 작은 컴퍼니라도 입단하면 다양한 안무가들과 작업할 수 있는 기회가 늘어나기 때문에 배울 게 많지 않나 싶다”고 조심스레 권했다.

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