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 트로피를 쥐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던 그 배우가 맞나 싶다. ‘써니’(2011) ‘한공주’(2013) 그리고 ‘해어화’(2016)에 이르기까지, 여러 작품에서 연기한 사연 많은 모습과도 아주 거리가 멀었다.
6일 서울 종로구 팔판로 한 카페에서 만난 배우 천우희(29)는 맑고 쾌활했다. 그리고 당찼다. 어마무시한 영화 ‘곡성’ 시나리오를 읽자마자 “이거 내 거다”라는 생각이 들었다는 그다. 집요하기로 소문난 나홍진 감독과의 작업도 전혀 힘들지가 않았단다.
“주변에서 다들 ‘힘들었겠다’며 되게 안쓰러운 눈으로 보더라고요. 근데 전혀 그렇지 않았어요. 배운 게 많은 현장이었어요. 촬영 끝나고 나서도 나홍진 감독님과 대화를 나누면서 격려와 위로를 많이 받았거든요. 저로써는 정말 얻는 게 많은 것 같아요.”
곡성은 한 시골 마을에 벌어진 의문의 연쇄 살인사건을 놓고 경찰(곽도원)과 무속인(황정민)이 진실을 파헤치기 위해 나서는 이야기다. 극 중 천우희는 사건을 꿰뚫어 보고 있는 목격자 무명 역을 맡았다.
“시나리오를 처음 봤을 땐 ‘멘붕’이었어요. 대혼란, 대혼돈 막 그랬는데(웃음). 감독님이 읽어보니 어떠냐고 물어보시는 거예요. 그래서 멘붕이라고 했더니 ‘어 맞아. 그런 거야’ 하시더라고요. 곽도원 선배님도 세 번 정도 읽고 나서야 알겠더래요.”
극 중 무명의 분량은 많지 않지만 존재감만큼은 강렬하다. 이 영화의 묘한 분위기를 대변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강한 캐릭터를 다양하게 소화해본 천우희에게도 색다른 도전이었다.
그는 “무명은 ‘강렬하다’ ‘강하다’ ‘세다’ 그런 선을 넘어선 인물이 아닌가 싶다”며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역할이라 그 기회가 주어졌다는 게 기뻤다”고 말했다. 이어 “연기를 하면서도 제가 상상했던 인물이 영화에서 어떻게 그려질지 정말 궁금했다”며 “작품에 대한 기대감이 있었다”고 덧붙였다.
“성격이 원래 대담한 편”이라는 천우희는 ‘추격자’(2008) ‘황해’(2010) 등 묵직한 전작을 자랑하는 나홍진 감독과의 만남에도 결코 주눅 들지 않았다.
“감독님 처음 뵀을 때? 별 생각 없었어요(웃음). 전작에 대한 느낌이나 타인의 평가에 별로 신경을 안 쓰거든요. 제 느낌이 중요한 것 같아요. (감독님은) 그냥 엉뚱하시고 재미있으셨어요. 무섭다거나 어렵다는 생각은 별로 안 들었어요.”
촬영할 때는 서로 티격태격하면서 대화를 많이 나눴다. 무명은 뭐라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캐릭터였기에 의견 교류를 통해 상당 부분 완성시켜 나갔다. 고민하는 천우희에게 나홍진 감독은 항상 “네가 생각하는 모든 게 맞다”고 얘기해줬다. 배우의 불안감을 덜어주기 위한 배려였다.
천우희는 “작품 성향 때문에 감독님 자체가 터프하고 선이 굵을 거라는 이미지가 있는데, 오히려 굉장히 섬세하고 남을 꿰뚫어보는 통찰력이 있으신 분”이라며 “예전에는 그냥 ‘영화 잘 만드는 감독’이라고만 생각했는데 같이 작업을 해보니 너무너무 좋았다”고 전했다.
“감독님이 정말 디테일하세요. 무표정한 연기도 저는 테이크 마다 약간씩 다르게 생각하면서 해보거든요. ‘이번에 이렇게 했으면 다음에는 저렇게 해볼까?’ 근데 감독님은 그런 디테일을 기가 막히게 캐치하세요. 그러니까 연기를 하면서도 정말 흥이 날 수밖에 없는 거예요. 세밀하게 다 알고 봐주시니까.”
이 열혈 영화인들이 모여 만든 영화는 개봉 전 소기의 성과를 거두게 됐다. 11~22일 열리는 제69회 칸 국제영화제 비경쟁부문에 초청됐다. 천우희는 “무슨 근자감(근거 없는 자신감)인지 모르겠는데 왠지 이 작품은 (칸에)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근데 막상 초청되니까 더 기쁘더라”며 웃었다.
충무로 신데렐라로 떠오른 천우희는 여배우 영화 기근 현상에도 불구하고 쉴 틈 없이 러브콜을 받는다. 그는 “예전과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많은 작품이 들어온다. 그만큼 선택할 수 있는 폭이 넓어졌다”면서 “정말 감사하지만, 그렇기에 더 잘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부담감과 책임감을 많이 느낀다”고 털어놨다.
올해만 벌써 두 작품, 해어화와 곡성을 연달아 내놓은 천우희는 또 바삐 발걸음을 옮긴다. 칸에서 돌아오자마자 차기작 ‘마이 엔젤’ 촬영장에 복귀한다. 그의 가열한 행보는 어쩌면 이제부터 진짜 시작일지도.
“연기는 삶과 같이 간다고 생각하거든요. 지난 10년간 연기에 대한 제 생각이나 자세에 대해서는 부끄러움이 없었어요. 앞으로도 그랬으면 좋겠어요. 조금씩 계속 성장하고 발전했으면. 경력 20~30년차가 되면 어떨지 저도 궁금하네요(웃음).”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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