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자칼럼]대구 남부교회 이국진 목사, '네 명의 나병환자들의 위대한 결단'

입력 2016-05-09 13:27

진퇴양난이라는 말이 있다. 앞으로 나아갈 수도 없고 그렇다고 해서 뒤로 갈 수도 없는 그런 곤란한 상황을 가리키는 말이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이런 어려운 상황을 종종 만나게 된다. 진퇴양난의 어려움에 처하게 될 때 우리의 스트레스 지수는 한 없이 올라가게 된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그런 스트레스를 견디다 못해 심지어 자살을 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성경을 보면 모든 가능성들이 꽉꽉 막혀있다 할지라도 우리가 절망할 것은 아니라고 가르친다.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가 되시며 환난 가운데 우리들에게 힘과 도움이 되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열왕기하 7장을 보면 진퇴양난에 빠졌던 네 사람의 나병환자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이들은 사마리아 성 밖에 거주하던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성 밖에 있으면서 성안의 사람들이 주는 음식으로 살았을 것이다. 그런데 사마리아 성이 아람 군대에 의해 포위를 당하게 되고 보급로가 차단되면서 극심한 기근에 처하게 되자 이들에게도 위기가 닥쳐오게 됐다. 그야말로 진퇴양난의 어려움에 처하게 됐다. 성 안으로 들어갈 수도 없었다. 성 안에 들어가는 것은 율법에 의해서 금지돼 있을 뿐만 아니라 성 안으로 들어간다 하더라도 먹을 것을 구할 수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 자리에 그냥 있을 수도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네 명의 나병환자들은 위대한 결단을 하였다.

그들이 내린 첫 번째 결단은 자신들의 위기상황에 대해서 분노하면서 욕을 해댈 희생양을 찾지 않은 결단이었다. 사람들은 어려운 일을 만나면 아무런 해결책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분풀이 대상을 먼저 찾는다. 홍해바다와 애굽 군대 사이에서 꼼짝없이 죽게 됐을 때 이스라엘 민족이 모세를 향해서 원망하고 욕을 했던 것처럼 말이다. 사마리아 성이 극심한 고통 가운데 있을 때 이스라엘 왕이 엘리사 선지자에게 그 모든 책임을 뒤집어씌우며 죽이려고 들었던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놀랍게도 이들은 서로를 향해서 원망하고 불평을 쏟아내면서 화풀이를 하지 않았다.

그것은 그들이 불평할 거리를 찾지 못해서가 아니었다. 그들은 얼마든지 비난거리를 찾으려면 찾을 수 있었을 것이다. 평상시 좀 많이 먹어대던 친구를 향해서 “그러니까 양식이 있을 때 아껴먹었어야 했는데 너는 돼지같이 너무 많이 먹어버렸어. 그래서 아무것도 먹을 게 남지 않은거야” 그렇게 비난하려면 할 수도 있었다. 평상시 마음에 들지 않던 친구를 향해서 “내가 이곳에 있지 말고 예루살렘이나 여리고로 옮겨가자고 했을 때 내 말을 들었어야 했어”라고 하면서 비난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렇게 힘들고 어려운 순간에 서로 비난하는 것은 문제의 해결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인지 모른다.

두 번째로 그들은 자신들의 상황을 비관하면서 자살을 시도하지 않았다. 진퇴양난의 어려움에 빠졌을 때, 그들은 소망을 잃지 않았다.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 어쩌면 자살은 가장 쉬운 방법이면서도 가장 어리석은 방법일 것이다. 사실은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도 세상 사람들의 지혜다. 이 상황 가운데서 살아남는다는 것은 정말 불가능한 일인 것처럼 보였지만 이들은 쉽게 그리고 어리석게 자살을 선택하지 않았다.

이들은 아람 군대에게 항복하는 것을 선택했다. 물론 이러한 선택은 신앙적인 차원의 결단은 아니다. 하지만 이들에게서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많다. 첫째, 이들은 현실에 대해 정확하게 냉정한 상황인식을 했다는 점이다. 불의한 청지기의 비유에 등장하는 청지기는 자신이 머지않아 해고될 것을 알았고 아직 자신에게 시간이 남아 있을 때에 해고 이후를 준비해야 한다는 사실을 정확하게 알았다. 그 청지기와 같이 이 네 명의 나병환자들은 지금 그들이 어떠한 상황인가를 분명하게 알았고, 살기 위해서 아람군대에 투항하는 선택을 했던 것이다. 물론 아람 군인들이 그들을 살려둘 가능성은 적었다. 하지만 만의 하나 그들이 자비로운 마음으로 살려줄 것을 소망하면서 희미하지만 유일한 가능성을 향해서 나아간 것이다.

그때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하나님께서는 아람 군대의 귀에 환청을 들리게 하셔서 마치 애굽 군대와 헷 군대를 데리고 이스라엘 왕이 아람군대를 공격하는 것처럼 착각하게 하셨다. 물론 나병환자들이 아람군대를 향해서 갔기 때문에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은 아니다. 자비로우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자의로 선택하신 하나님의 깊으신 뜻에 따른 것이었을 뿐이다. 나병환자들은 자신들이 생각하고 기대했던 것보다 더 놀라운 일을 경험하게 됐다. 그렇다. 하나님의 은총은 우리의 상상을 언제나 초월한다.

안타까운 것은 우리들은 나병환자와 같은 정확한 현실인식이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마치 천년만년 살 수 있는 것처럼 생각하며 산다. 그러면서 우리의 죽음 이후를 대비하지 않은 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성경은 기록한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을 것”이라고 말이다.(히브리서 9장 27절) 영적으로 굶주림 가운데 있는데도 전혀 느끼지 못하고 그냥 이렇게 성 밖에서 머물고 있어서는 안 된다. 나병환자들이 결단했던 것처럼 우리는 영생이 있는 길을 향해 결단하며 나아가야 한다.



이국진 목사

대구=최일영 기자 mc102@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