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의 장인 한진섭과 철의 주술사 최태훈 2인전 ‘파한’ 한남동 인터파크씨어터 네모 5월29일까지

입력 2016-05-09 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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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훈_숨_메탈와이어_3000x3000x3000mm_2016
서울 용산구 인터파크씨어터가 봄 기획전으로 블루스퀘어 내에 위치한 복합문화공간 NEMO에서 5월 3일부터 5월 29일까지 설치 조각전인 ‘파한’ 전시를 연다. 40년 넘게 돌조각을 해온 한진섭 작가와 철을 소재로 작품을 해온 최태훈 작가의 2인전이다. 한적함을 깨뜨린다는 뜻의 ‘파한(破閑)’(Breaking break)은 고려시대 문인 이인로가 쓴 ‘파한집’에서 따온 말이다. 네모 실내 전시장 외에도 블루스퀘어 공연장 입구와 야외에 작품들을 전시하여 관객들이 편하게 감상할 수 있도록 했다(02-6399-7459).



◇행복한 표정의 동물 돌조각 한진섭=홍익대 조소과를 나온 작가는 40년 넘게 돌만 다루었다. 강아지와 호랑이 등 동물가족을 따뜻하면서도 행복한 캐릭터로 표현했다. 단순한 형태와 돌의 질감을 살린 조형미는 돌 조각의 정수를 보여준다는 평가다. 대중성과 작품성을 겸비한 그의 작품은 프랑스 파리 대통령궁에 소장되는 등 글로벌 작가로 우뚝 섰다.

서울 용산구 인터파크씨어터의 네모갤러리 야외에서 29일까지 ‘파한(破閑·한적함을 깨뜨리다)’이라는 주제로 열리는 전시에 대형 강아지 ‘생생(生生)’을 내놓았다. 1년2개월 동안 돌을 깨고 모자이크처럼 붙여서 만든 작품이다. 강아지가 다리를 들고 오줌을 싸고 있는 모습이 재미있다. 작가는 “잘 먹고 잘 자고 잘 싸는 게 생명 순환의 근본이라는 점을 얘기하고 싶다”고 말했다.



◇한 폭의 수묵화처럼 철조각 최태훈=경희대 조소과를 나온 작가는 철 작업을 40년 가까이 했다. 차가운 금속에 따스한 빛을 넣어 생명력을 불어넣는 작업으로 유명하다. 숲, 인체, 우주 등 이미지의 작품은 보는 이로 하여금 존재와 소멸의 의미에 대해 질문하게 한다. 꽃다발이 폭죽처럼 터지는 그의 ‘부케’ 작품은 한국뿐 아니라 중국 싱가포르 홍콩 등에 설치돼 있다.



네모갤러리 실내에 철사로 한 폭의 수묵화처럼 표현한 ‘숨(breath)’ 시리즈를 선보인다. 철사의 단면들은 반짝이는 별이기도 하고, 바람에 흩날리는 꽃씨이기도 하고, 절규하는 인간의 손짓이기도 하다. 작가는 2년 동안 이 작업에 매달리면서 그라인더에 얼굴이 베이는 중상을 입기도 했다. 숱한 역경을 거친 결과 ‘생명의 숨’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둘이면서도 하나처럼 한진섭과 최태훈=하나의 재료에 천착하는 모든 예술가들처럼 이들 역시 재료가 주는 물성 자체의 감각적 사유를 뛰어넘으려고 한다. 재료의 물성을 뛰어넘고자 하는 의지는 혁신성과 맞닿고 그 재료의 시간성에 오롯이 자신을 던지고 대화하는 것은 감각성과 궤를 이룬다. 한진섭은 단순한 형태와 돌의 질감을 살린 원시적 조형미에서 ‘붙이는 석조’를 확대하여 선보인다.

깎거나(조각) 붙이는(소조) 기존 언어를 새롭게 해석하는 것이다. 돌을 깨뜨리고 깨뜨린 돌 조각을 모자이크처럼 붙여서 만들어가는 ‘붙이는 석조’는 전통 조각, 특히 돌이라는 재료의 한계를 다시 묻는 작업이다. 천연덕스레 오줌을 누는 귀여운 강아지는 우주 만물의 순환과 생의 다채로움을 뜻하는 생생지도(生生之道), 배뇨의 생리가 생명순환의 근본적인 이치임을 말한다.

최태훈의 숲, 우주, 일상의 철조각은 익히 알려진 바다. 돌도 그렇지만 철이라는 소재 역시 조각에서 가장 원형적인 질료다. 이번 전시에서 새롭게 선보이는 ‘숨(breath)’시리즈는 원형과 사각형의 단순함을 지닌다. 날아다니는 꽃씨 같기도 하고 바람에 흩날리는 풀이기도 하며 생명의 숨이 헐떡이는 너른 들판이거나 절규하며 손을 뻗는 인간들의 몸부림 같기도 하다. 금속 철사의 작은 단면들은 별처럼 반짝이고 숨처럼 헐떡인다. 차갑고 날카로운 재료 너머에 생명의 아우라가 풍긴다. 생명의 메타포다.

전시를 기획한 정형탁 큐레이터는 “1990년대 초 그 많던 미디어와 설치, 영상이 한 순간 사라졌지만 그 득세의 시간 속에서도 이들은 묵묵히 돌을 깎고 철을 자르고 붙였다. 이미 마음에 한가로움을 얻은 자들은 스스로가 별이요 우주다. 그래서 급변하는 매체환경 속에서도 이들은 스스로 금석(金石)의 도(道)를 걸어 나갈 것이다. 우리는 그 과정을 잠시 지켜보는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이광형 문화전문기자 g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