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비핵화 첫 언급 의미

입력 2016-05-08 15:14

김정은 북한 노동당 제1비서가 처음으로 ‘비핵화’를 언급하면서 북핵 국면에 끼칠 영향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김 제1비서의 발언이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받기 위한 것으로, 여전히 핵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속내를 드러낸 것으로 본다.

다만 극도의 긴장·대치 상황에서 민감한 발언을 꺼내면서 대화 국면으로의 전환을 꾀하는 ‘징검다리’ 성격도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8일 북한 언론 보도에 따르면 김 제1비서는 지난 6~7일 당 중앙위원회 사업총화(결산) 보고에서 “세 차례의 지하 핵실험과 첫 수소탄 시험의 성공적 진행”, “지구 관측위성 ‘광명성 4호’ 발사 대성공”, “핵보유국 지위에 맞는 대외 관계 발전” 등 핵전력 과시 발언을 이어나갔다.

그리고 핵을 언급하는 마지막 부분에서 핵 전파 방지 의무를 이행하고 세계의 비핵화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힌다. 이어 과거 적대국가라도 자주권을 침해하지 않으면 관계를 정상화할 것이라는 발언을 내놓는다.

따라서 ①북한은 이미 핵을 가졌으며 ②핵 포기가 아닌 핵 군축회담을 통해 ‘세계의 비핵화’를 실현하고 ③이를 인정한다면 과거 적대국과도 관계를 정상화하겠다는 뜻을 밝힌 것이다.

홍현익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북한이 비핵화를 하겠다는 게 아니라 군축회담을 하자는 얘기”라며 “미국이 대북 적대시 정책 폐지하고 평화적으로 나온다면 우리도 응할 용의가 있다는 차원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박지영 아산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도 “김 제1비서가 처음 ‘비핵화’를 말했다 뿐이지 실제론 미국이란 일대 일로 핵감축 하자는 얘기”라며 “과거 대화하자고 하면서 이면에서 핵개발을 해왔던 북한 특성상 이번에도 그런 식으로 시간을 벌려고 하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문장만 보고 평가해서는 안된다는 해석도 있다. 북한이 던진 이면의 메시지를 봐야 한다는 것이다. 김용현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북한이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받으려는 의도가 깔려있다”고 전제한 뒤 “핵무기 보유 정당성을 확보하면서도 국제사회가 요구하는 핵의 비확산 의무를 지키겠다는 뜻을 드러낸 것”이라고 말했다. 따라서 핵물질 보유·생산 중단 등 핵능력 동결 후속 조치를 지켜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5차 핵실험을 하느냐 마느냐로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던 흐름을 북한이 한번 바꿔줬다”고 평가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도 “유화적인, 부드러운 메시지가 많다. 대화국면으로 전환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번 발언을 계기로 중국이 남북간, 북·미간 또는 6자 회담 등을 재개하기 위한 적극 중재에 나설 수 있고, 북한도 미국과의 물밑 접촉을 타진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그는 “지금 상황에서 핵능력 고도화 대신 비핵화를 언급한 북한 최고지도자의 메시지를 잘 읽어야 한다”며 “북한과 미·중 등 관련국 움직임을 놓칠 경우 우리가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강준구 고승혁 기자 eye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