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틸리케 감독 뒤로 카메라를 들이댔더니..."진짜로 골이 터졌다"

입력 2016-05-05 12:55
후반 23분 전북 현대가 코너킥을 얻었다. 왠지 느낌이 좋았다. VIP석에 앉아 있는 슈틸리케 감독 뒤로 3m 가까이 다가가 휴대폰 카메라를 켜고 각도를 잡았다. 수비수 최재수가 공을 감아올리자, 골대 앞에 있던 최규백이 백헤딩으로 반대편으로 보냈다. 이어 임종은의 오른 발에 맞은 공은 장쑤 쑤닝의 골 망을 뒤흔들었다. “와∼.” 함성이 쏟아졌다. 1만 7000여명의 관중이 박수를 치거나 두 손을 번쩍 치켜들며 환호성을 질렀다. 중국에서 건너오거나 유학 중 입장한 1000여명의 장쑤 쑤닝 응원단은 한순간 ‘얼음’이 됐다.

“와, 진짜로 골이 들어갔다.” 뭔가 좋은 장면이 연출될 것으로 기대를 하고 카메라를 들이댔는데. 아니 꼭 넣어줬으면 하는 바람이 더 컸는데…. 정말로 골을 성공시킨 것이다.

이 골은 1대2로 끌려가며 벼랑 끝을 헤매던 전북이 2016 AFC 챔피언스리그(ACL) 16강 진출을 확정짓는 천금같은 동점골이었다. 운 좋게도 현 국가대표 감독이 지켜보는 가운데 최강희 전 국가대표 감독이 이끄는 전북이 짜릿한 골을 성공시키는 귀한 순간이 카메라에 고스란히 담겼다.

4일 밤 전북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ACL 조별리그 마지막 결전이었던 전북 현대와 장쑤 쑤닝의 경기. 대한민국 국가대표 축구팀 울리 슈틸리케 감독은 이날 경기장을 직접 찾아 관전했다.

전북은 이날 전반 18분 선취골을 얻으며 순조롭게 출발했으나 후반 7분 페널티킥으로 역전을 허용하며 내내 펜들의 애를 태웠다. 다행히 임종은의 논스톱 슛 한방으로 홈구장을 축제의 장으로 만들었다.

하지만 슈틸리케 감독은 동점골이 터져 수많은 관객이 자리를 박차며 환호할 때도 담담하게 지켜봤다. 잠깐 옆의 통역과 뭔가 얘기를 나눌 뿐이었다. 아마도 “골을 넣은 선수가 누구냐”고 묻는 듯 했다. 조용히 경기를 지켜보던 그는 종료 휘슬이 울리고 나서야 박수를 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결국 전북은 이날 2대 2로 비겨 E조 1위(승점 10)로 16강에 진출했다. 아슬아슬하고 힘겨웠지만 아시아 정상 도전을 위한 큰 고비를 넘기는 시간이었다.

반대로 아시아 정복을 선언하며 엄청난 투자를 했던 장쑤는 조 3위로 탈락했다. 이날 전용기를 타고 입국해 전주까지 내려왔던 장쑤의 장진둥(쑤닝윈상그룹 회장) 구단주는 씁쓸하게 경기장을 빠져 나가야 했다. 3명의 브라질 용병을 스카웃하며 1000억여 원을 쏟아 부은 그는 16강행 티켓 1장을 그 어마어마한 돈으로도 사지 못하는 꼴이 됐다. 전주=글·사진 김용권 기자 ygkim@kmib.co.kr

전주=김용권 기자 yg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