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뱃갑 경고그림 입법 취지 훼손"…상단 배치 철회 규개위 비판 확산

입력 2016-05-04 10:42

최근 담뱃갑 경고그림의 상단 배치 철회를 권고한 대통령 직속 규제개혁위원회(이하 규개위)의 결정에 대해 보건의료 전문가 단체들이 “경고그림 도입의 입법 취지를 훼손했다”며 강력 반발하고 나섰다. 대한예방의학회와 한국역학회, 대한가정의학회 등이 잇따라 성명을 내고 규개위 비판 대열에 합류했다.

이들은 특히 규개위가 담배업계 관계자를 불러 의견을 듣고, 심지어 과거 경력상 담배산업과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인사도 위원에 포함된 것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제기했다.

대한예방의학회와 한국역학회는 지난달 28일 성명서를 내고 “규개위가 지난달 22일 국민건강증진법 시행령 개정안 심의에서 담배업계 편을 들어 경고그림의 효과를 떨어뜨리도록 결정한 것에 대해 깊은 우려를 표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두 학회는 “규개위는 담배업계 관계자를 끌어들여 주장을 펴게 했을 뿐 아니라 그 편을 들어 경고그림의 위치를 담배회사가 마음대로 정하도록 했다”면서 “이는 국민건강을 해치기 때문에 규제 대상이 되고 있는 담배회사에게 정책을 맡기자는 비합리적 결정”이라고 비판했다. 또 “담배규제 정책을 수립함에 있어 담배업계나 이를 대변하는 조직을 참여시키지 말아야 한다는 국제담배규제기본협약(FCTC) 5조 3항 가이드라인을 명백히 위반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FCTC는 담배가 인류에 미치는 해악에 대해 국제사회가 함께 대처하자는 취지로 2003년 채택된 국제협약이다. 우리나라도 2005년 비준했다.

두 학회는 “담뱃갑 경고그림은 기존 흡연자들에게는 금연을 결심하게 하고 청소년들에게는 흡연을 시작하지 않게 하는 예방 효과를 갖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FCTC에서는 실증적 연구를 바탕으로 경고그림이 충분한 효과를 나타내도록 담뱃갑 상단에 배치해 가시성을 높일 것을 요구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FCTC의 권고에 따라 담뱃갑 경고그림을 사용하는 국가 다수가 상단에 두고 있다. 우리나라 경고그림처럼 크기가 담뱃갑 면적의 30% 밖에 안 될 경우에는 경고그림을 하단에 둘 경우 진열장에서도 가림판에 가려서 보이지 않게 되고 경고그림을 인지하는 비율도 낮아져 법의 취지를 살릴 수 없다”고 덧붙였다.

두 학회는 “그럼에도 규개위는 경고그림이 담배 판매자의 정신건강을 해친다는 등의 과학적 근거가 없는 담배업계 주장을 반영해 경고그림의 입법 취지를 훼손했다”면서 “규개위는 공정한 절차에 따르는 재심의를 통해 국민건강권 보호의 대의와 국제 표준에 합당한 결정을 내려야 한다”고 촉구했다.

대한가정의학회도 “규개위는 정부의 불피요한 과잉 규제정책을 심의하고 조정하는 역할을하는데 존재의의가 있다. 하지만 담뱃갑 경고그림의 상단 배치는 불필요한 과잉 정책이 아니라 국민건강권을 확보하고 국제적 표준에 이르기 위한 흡연규제정책의 핵심 사안으로 반드시 지키고 발전시켜야 할 필수 정책”이라고 밝혔다.

학회는 “담뱃갑 경고그림의 도입 취지가 왜곡되는 심각한 사태를 우려한다. 재심의를 통해 입법 취지 대로 담뱃갑 경고그림의 상단에 제대로 배치돼 국민건강권 보호라는 큰 명제에 합당한 결정을 내리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민태원 기자 tw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