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리판 장발장’…이탈리아 대법원, 가게에서 소시지랑 치즈 훔친 홈리스 무죄 인정

입력 2016-05-04 10:31
이탈리아 대법원이 결국 ‘장발장’의 손을 들어줬다. 지난 2011년 슈퍼마켓에서 치즈와 소시지를 훔친 혐의로 기소된 홈리스 남성에 대해 “영양 공급이 절박했기 때문에 범죄로 볼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3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가디언에 따르면 해당 사건의 주인공은 로만 오스트리아코프란 30세 남성으로 우크라이나 이민자 출신의 홈리스 남성이다. 그는 2011년 제노바의 한 슈퍼마켓에서 빵을 구매하던 도중에 돌연 부르스텔이라 불리는 작은 소시지와 치즈를 ‘슬쩍’ 했다. 그가 훔친 소시지와 치즈는 고작 4.7유로(약 6200원) 상당이었다. 절도 혐의로 체포된 그는 제노바 지법에서 징역 6개월에 100유로(약 13만2400원)의 벌금을 선고받았다. 벌금조차 내기 어려운 오스트리아코프의 형편이 알려지면서 현지에서는 그를 빅토르 위고의 소설 ‘레미제라블’에 나오는 ‘장발장’에 비유하기도 했다.

이날 대법원이 오스트리아코프에 실형을 내린 하급심 판결을 뒤집는 결정을 내린 데 대해 이탈리아 현지에서는 대체로 환영하는 분위기다. 현지 유력 일간지인 코리에레 델라 세라는 “해마다 600억 유로(약 80조원)만큼 비리가 터지는 나라에서 이 정도는 무죄로 볼 만 하다”며 “(무죄 결정은)이탈리아 사법 체계의 발전”이라고 평가했다. 한 칼럼니스트는 현지 일간 라 스탐파에 “자본주의의 본고장인 미국에서라면 신성 모독과도 같은 판결일 것”이라면서도 “생명권은 재산권보다 앞선다”고 지적했다.

이런 사회적인 분위기는 침체된 이탈리아 경제 상황과 관련이 깊다. 최근 한 연구에서 이탈리아 국민 4명 당 1명 꼴로 가난이나 사회적 배제에 노출돼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가디언은 전했다. 유럽의 자선기구인 카리타스 유럽은 빈곤에 노출된 이탈리아 국민이 약 28.4%로 유럽연합(EU) 평균인 24.5%를 상회한다고 밝혔다.

이종선 기자 remembe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