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스터시티 우승 이끈 ‘B급 명장’ 라니에리 감독

입력 2016-05-04 09:29
클라우디오 라니에리 레스터시티 감독. 사진=AP뉴시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레스터시티의 클라우디오 라니에리(65·이탈리아) 감독이 4일(한국시간) 영국 언론 BBC와의 인터뷰에서 “레스터시티가 다시 프리미어리그에서 우승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밝혔다.

라니에리 감독은 “부자 구단이 항상 우승해 왔다”며 “그것은 다음 시즌도 그렇고 앞으로 10년, 20년 동안 똑같을 것이다. 깜짝 놀랄 우승은 대략 20년 만에 한 번씩 온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는 슈퍼스타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선수들이 필요하다. 나는 빅 스타 없이 스쿼드를 향상시키고 싶다”고 덧붙였다.

레스터시티 선수들의 몸값은 전체 5700만 파운드(약 953억원)로, 프리미어리그 팀들 중 가장 낮은 수준이다.

2013-2014 시즌 레스터시티의 꿈은 1부 리그 승격이었다. 꿈은 이루어졌다. 잉글랜드 챔피언십(2부 리그)에서 우승한 레스터시티는 10년 만에 프리미어리그(1부 리그)로 승격했다. 2015년 3월까지 최하위(20위)에 머물러 있던 레스터시티는 후반에 5연승을 질주하며 14위에 올라 프리미어리그 잔류에 성공했다. 이런 레스터시티가 이번 시즌 프리미어리그를 정복했다. ‘레스터시티의 기적’에 프리미어리그뿐만 아니라 세계 축구계가 발칵 뒤집혔다.

레스터시티가 프리미어리그 승격 2시즌 만에 우승을 차지하자 세간의 눈길은 라니에리 감독에게 쏠리고 있다. 국내 축구팬들에게 라니에리 감독은 ‘긴급 소방수’ 또는 ‘B급 명장’으로 통한다. 그의 행보를 살펴보면 왜 이런 별명이 붙었는지 수긍이 간다.

수비수 출신인 라니에리 감독은 화려한 선수생활을 보낸 인물은 아니다. 1973년 이탈리아 세리에 A(1부 리그)의 AS 로마에서 프로에 데뷔했지만 고작 6경기에만 출전했다. 이후 이탈리아 2부 리그를 전전했다. 1986년 US 팔레르모(이탈리아)에서 선수생활을 마감한 그는 1986년 비고르 라메치아 칼초(이탈리아)를 맡으면서 지도자의 길로 들어섰다. 그는 1988년 칼리아리 칼초(이탈리아)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세리에 C1(3부 리그)에 있던 칼리아리를 연속해서 승격시켜 세리에 A로 올려놓은 것.

지도력을 인정받은 라니에리 감독은 SSC 나폴리, AC 피오렌티나(이상 이탈리아). FC 발렌시아,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이상 스페인), 첼시 FC(잉글랜드), 유벤투스 FC, AS 로마, 인터 밀란(이상 이탈리아) 등 유명한 클럽들을 두루 맡았다. 이 중 첼시 감독 시절을 한번 펴보자. 그는 2000년 9월부터 2004년 6월까지 첼시 지휘봉을 잡아 총 199경기에서 107승을 올렸다. 프랭크 램파드, 엠마뉴엘 쁘띠 등을 데려오고, 존 테리, 로버트 후스 등을 발국한 그는 2002-2003 시즌 첼시에 챔피언스리그 출전권을 안겼다. 또 2003-2004 시즌엔 첼시를 준우승으로 이끌었으나 무패 우승을 차지한 아르센 벵거(아스날) 감독의 그늘에 가렸다. 로만 아브라모비치 첼시 구단주는 거액을 투자하고자 우승하지 못하자 팀을 개혁하겠다며 라니에리 감독을 내치고 조세 무리뉴 감독을 선임했다.

라니에리 감독은 첼시 지휘봉을 내려놓은 후 여러 빅 클럽들을 거쳤다. 2015년 6월 나이젤 피어슨이 프리시즌 일부 선수들의 난잡한 파티로 레스터시티 감독직에서 물러났고, 라니에리 감독은 후임으로 레스터시티를 맡았다. 11년 만에 프리미어리그로 돌아온 라니에리 감독은 그야말로 돌풍을 일으켰다. 2부 리그 출신 선수들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헤아리는 라니에리 감독은 제이미 바디, 리야드 마레즈 등 2부 리그 선수들의 역량을 이끌어 내 마침내 프리미어리그를 제패했다.

레스터시티의 기본 전술은 강력한 압박과 날카로운 역습이다. 단순하지만 위력적이다. 레스터시티는 상대 공격수가 볼을 소유하면 곧바로 강한 압박을 가한다. 거친 몸싸움으로 볼을 따내면 빠른 역습을 시도하고, 날카로운 공격으로 골을 뽑아낸다.

라니에리 감독은 점유율, 패스 성공률 등 현대 축구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수치에 집착하지 않는다. 레스터시티는 볼 점유율에서 44.7%에 그치고 있다. 20개 팀 중 18위다. 패스 성공률 역시 70%로 최하위에 처져 있다. 그러나 경기당 유효슈팅에서 4.6개를 기록, 6위에 올라 있다. 효율적인 공격 축구를 구사한다는 의미다. 레스터시티의 축구는 지루한 압박 축구가 아니라 매력적인 공격 축구라고 할 수 있다.

김태현 기자 tae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