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성’ 나홍진 감독의 징글징글한 집념이 빚어낸 역작

입력 2016-05-03 19:00 수정 2016-05-03 19:04
뉴시스

6년을 갈고닦은 나홍진 감독의 칼은 이토록 묵직했다. 156분간 그 무게감에 압도돼 숨이 가빠질 정도다. 감독의 고집과 배우들의 헌신이 어마어마한 이야기를 탄생시켰다. 나 감독이 ‘황해’ 이후 6년 만에 내놓은 영화 ‘곡성’이다.

3일 서울 광진구 롯데시네마 건대입구에서 열린 곡성 기자간담회에서 나 감독은 “전작들과 다르게 곡성은 피해자의 시각에서 바라본 작품”이라며 “대체 어떤 이유로 그런 피해를 당해야 하는 것일까라는 의문에서 시작했다”고 소개했다.

어떤 불행이 닥쳤을 때, 그건 피해자에게 어떤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라 전혀 무관한 이유에서 비롯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다는 게 그의 말이다.

오는 12일 개봉을 앞둔 곡성은 한 마을에 벌어진 의문의 연쇄 사건을 두고 경찰(곽도원)과 무속인(황정민), 목격자(천우희)가 진실을 파헤치기 위해 나서는 이야기다. 영화는 단순한 드라마에서 그치지 않는다. 샤머니즘과 엑소시즘을 뒤섞은 방대한 세계관이 펼쳐진다.

나 감독은 “시나리오를 써나가는 과정에서 어느 순간 이 방대함에 엄두가 나지 않아 작업을 중단하고 각계 사람들을 만나 인터뷰를 했다”며 “그 과정에서 심오함과 신성함을 느끼며 이런 결과물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영화는 배우들의 꽉찬 연기로 완성됐다. 나 감독 역시 “저는 거들었을 뿐”이라며 배우들에게 모든 공을 돌렸다. 그는 “영화가 주는 강렬함은 배우 개개인의 뛰어남과 강렬함에서 온 게 아닐까 생각한다”며 “배우들이 다 해주신 거다. 진심으로 감사하다”고 전했다.

평소 철두철미한 작업 스타일로 유명한 그다. 함께 작업하는 배우 입장에서는 상당히 고된 촬영으로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곽도원 천우희 황정민은 다소 의외의 반응을 내놨다. 도리어 나 감독에게 찬사를 보냈다.

곽도원은 “촬영 기간 6개월 동안 짜릿한 순간 많았다”며 “육체적으로는 힘들었지만 정신적으로는 맑은 시간을 보냈다”고 회상했다. 특히 병원에 입원해있는 상태로 촬영장에 출퇴근한 나 감독 열정에 감동했다고 덧붙였다.

“징글징글했다”며 유쾌하게 답변을 시작한 천우희도 별반 다르지 않은 얘기를 했다. 그는 “감독님은 절대 타협이 없으시고 매 순간 할 수 있는 최선을 신다”며 “그런 점 덕분에 저도 신이 났다. 갖고 있던 갈증을 마음껏 푼 것 같다”고 털어놨다.

황정민은 “어차피 우린 결과를 보여주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과정이 어땠는지는 그리 중요히 않다”며 여유를 보였다. 그는 “저도 워낙 집요하게 하는 걸 좋아하는 스타일이라 나 감독과 케미가 좋았다”며 “초심으로 돌아가야겠다는 계기가 되어준 작품”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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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해외에서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다. 오는 11~22일 열리는 제69회 칸 국제영화제 비경쟁부문에 진출했다.

‘추격자’(2008·미드나잇 스크리닝)와 ‘황해’(2011·주목할 만한 시선)에 이어 세 번째 칸의 부름을 받은 나 감독은 “스스로 방향성에 대해 의심하게 될 때가 있는데 이런 선택을 받으면 ‘내가 전혀 틀린 방향으로 가는 건 아니구나’ 싶어 큰 힘이 된다”고 말했다.

곡성은 폭스 인터네셔널 프로덕션에서 제작을 맡아 구체적인 해외 진출도 논의 중이다. 이날 간담회에 참석한 폭스의 토마스 제게이어스 대표는 “재능있는 나 감독의 작품 제작에 참여할 수 있어 영광이었다”며 “현재 로컬영화 제작 건수는 연간 1편 정도인데 점차 2~3편으로 확대해나갈 계획”이라고 귀띔했다.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