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로 체크카드 보내라 " 취업 미끼 보이스피싱 '경보'

입력 2016-05-03 06:00
구직자 명의로 대포통장을 만든 보이스피싱 사기범이 지난달 구직자에게 보낸 실제 서류. 금융기관명과 계좌번호를 요구하고 있다. 사기범은 이후 구직자에게 체크카드를 회사로 보내라고 요구했다. 금융감독원 제공.

대학 휴학생 L씨(21)는 지난달 11일 인터넷 아르바이트 구직 사이트에 등록된 ‘콜럼비아 픽○○’에 구직 신청서를 냈다. 이 업체는 코카콜라 소유 미디어 회사였던 콜럼비아 픽처스를 사칭한 유령회사였다. 구직사이트에 ‘20세기폭스 자회사인 다국적 기술 및 미디어 회사’라고 공고도 냈다. 그럴듯한 공고에 L씨는 그대로 속아 넘어갔다. 하지만 국내에 콜럼비아 픽○○라는 회사는 아예 존재하지 않았고, 홈페이지도 없었다.

업체를 사칭한 사기범은 “합격자 중 한명이 개인사정으로 빠졌다”며 L씨에게 합격을 통보했다. 구직 신청서를 낸 지 이틀만이었다. 사기범은 L씨에게 이력서와 주민등록번호, 거래은행, 계좌번호를 요구했다. 급여계좌와 회사 ID카드를 만들어야 한다고 핑계를 댔다.

요구는 점점 대담해졌다. 회사 보안상 체크카드를 이용해 출입증을 만든다며 카드를 택배로 보내달라고 했다. L씨가 체크카드를 보내자 사기범은 더 이상 전화를 받지 않았다. 통장내역을 확인해 보니 출처를 알 수 없는 돈이 입·출금된 상태였다. L씨의 통장은 보이스피싱에 이용된 것으로 조사됐다. 보이스피싱 피해자들은 L씨를 수사기관에 신고했고, 그는 대포통장 명의인으로 금융회사에 등록됐다.

채용 공고를 이용해 구직자로부터 체크카드와 비밀번호를 가로채 보이스피싱 사기에 이용하는 범행이 늘고 있다. 금융감독원은 취업 미끼 보이스피싱에 ‘소비자 경보’를 발령했다고 3일 밝혔다. 피해자들은 L씨처럼 의심 없이 체크카드와 비밀번호를 양도했다가 대포통장 명의인으로 등록됐다. 이런 사례만 1~3월 사이 금감원에 51건이 접수됐다.

L씨처럼 대포통장 명의인이 돼 금융질서문란행위자로 등록되면 각종 금융거래가 제한되는 피해를 받을 수 있다. 기업 정식 채용과정에서 계좌비밀번호나 체크카드 양도를 요구하는 행위는 보이스피싱 범행과 관련이 있다는 걸 명심해야 한다.

금감원 불법금융대응단 김범수 팀장은 “고용주의 요구를 거부하기 어려운 구직자의 절박한 심리를 사기범이 이용한 것”이라며 “대포통장 확보수법이 점점 지능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개인정보 유출이 의심되는 경우 금감원 불법사금융 피해신고센터(1332)에 신고할 수 있다.

나성원 기자 na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