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왜 담배만 규제하나” 담배회사 편든 규개위… 회의록 입수

입력 2016-05-02 17:32

지난달 22일 열린 규제개혁위원회 회의는 흡연 경고그림의 담뱃갑 상단 부착에 제동을 걸었다. 이날 회의에서 담배회사의 입장을 대변하는 듯한 발언이 다수 나온 것으로 2일 확인됐다. 회의에 참석한 규개위 민간위원 중에는 KT&G 사외이사를 지낸 인사가 있어 논란이 예상된다.

◇“왜 술은 놔두고 담배만 규제하느냐”=국민일보가 입수한 규개위 회의록에 따르면 민간위원 A씨는 ‘술도 해악이 큰데 왜 담배만 규제하느냐’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이 위원은 “주류가 담배보다 사회적 비용이 적지 않은데 담배에 대해서만 강력한 규제 정책을 입안하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따져 물었다. 이어 “사회적 해악이 심대하다면 담배 판매를 금지할 생각은 없느냐”고 했다. 담배 판매 금지가 현실화될 가능성이 낮은 상황에서 정부 실무자들을 압박한 것이다.

민간위원 B씨는 우리나라가 가입한 세계보건기구(WHO) 담배규제기본협약(FCTC)의 가이드라인을 반드시 지켜야 하는 것이냐고 질문했다. 우리나라는 2005년 국제협약인 FCTC를 비준해 준수 의무가 있다. 그럼에도 그는 “국제협약도 국내 적용에 있어서는 논리적 근거와 타당성을 갖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간위원 C씨는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담뱃갑 경고그림이 신문·방송에서 사용이 제한될 정도로 혐오스러워 법 위반으로 소송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경고그림이 판매업소에 종사하는 종업원들에게 심한 혐오감과 정신적 스트레스를 줄 수 있다는 발언도 나왔다. 다른 민간위원은 “(썩은 폐를 만지는) 금연 교육으로 어린 학생이 정신적 피해를 겪은 사례도 있다”고도 했다.

규개위는 이날 경고그림의 담뱃갑 상단 부착 의무화를 규정한 국민건강증진법 시행령 조항을 삭제하도록 했다. 규개위는 “판매업소가 경고그림을 가리기 위해 담배 진열대를 새로 제작하면 막대한 진열장 교체 비용만 들 것”이라고 밝혔다. 회의에 참석한 서홍관 한국금연운동협의회장은 “규개위가 담배회사 의견을 받아들이겠다고 결론을 내린 상태에서 회의를 열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비판했다.

◇전 KT&G 상임이사 참석 논란=이날 규개위 회의에 참석한 민간위원 13명 가운데 손원익 안진회계법인 R&D센터 원장은 KT&G 사외이사를 지낸 적이 있다. 이 때문에 회의 참석이 부적절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손 원장은 지난해 KT&G 사장직 공모에도 지원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규개위 민간위원장을 맡고 있는 서동원 김앤장법률사무소 상임고문은 ‘회피’를 신청하고 회의에 참석하지 않았다. 김앤장은 담배소송에서 필립모리스코리아를 대리하고 있다.

규개위는 대통령 직속기구로 정부의 규제정책을 심의·조정하는 역할을 한다. 당연직인 정부위원 6명 외에 민간위원 17명이 있다. 상당수가 경영학·행정학·법학 교수인데 친기업적 성향이 많다는 평가를 받는다. 지난달 손 원장은 현대증권 사외이사로, 김민호 위원(성균관대 교수)은 제일기획 사외이사로 선임됐다. 한경희 한경희생활과학 대표도 민간위원 중 한 명이다.

권기석 기자 key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