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법원장’ 이렇게 적고 로스쿨 합격한 학생들

입력 2016-05-02 17:30

지난 3년간 부모·친인척의 신상을 자기소개서에 적은 학생 24명이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합격증을 받아들고 ‘예비 법조인’이 된 것으로 2일 확인됐다. 전형 요강을 어기고 부모의 직업을 공개한 학생들도 발견됐다. 다수 로스쿨이 ‘현대판 음서제’라는 불명예를 끝내 벗지 못했지만 ‘솜방망이 처벌’만 받고 넘어가게 됐다.

24건 중 부모나 친인척의 신상을 알 수 있도록 구체적으로 기재한 경우가 5건이었다. 한 학생은 ‘아버지가 ○○시장’이라고 적은 자기소개서를 A대학 로스쿨에 냈다. A대학 로스쿨은 부모·친인척 이름이나 직장명을 기재하면 안 된다고 명시한 자기소개서 작성 기준이 있었다. 본인은 물론 아버지 신상정보까지 그대로 드러난 이 자기소개서는 면접관에게 건네졌고, 해당 학생은 합격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교육부는 “이 학생이 입학 당시 아버지가 현직에 있지는 않았다”고 해명했다.

외삼촌이 ○○변호사협회 부협회장, 아버지가 법무법인 ○○대표, 아버지가 ○○공단 이사장, 아버지가 ○○지방법원장이라고 적은 자기소개서도 있었다. 다만 이들이 합격한 로스쿨은 전형 요강에 부모 등의 신상을 기재하면 안 된다는 조항이 없는 상태였다.

나머지 19건은 부모·친인척의 직위, 직장을 단순 기재하고 성명이나 재직 시기를 특정하지 않아 당사자를 추정할 수 없었다고 교육부는 설명했다. 할아버지 아버지 등이 대법관, ○○청 공무원, 검사장, ○○법원 판사 등을 지냈다고 적은 경우였다. 심지어 ‘로스쿨 원장’인 점을 내세운 자기소개서도 1건 있었다. 자기소개서에 등장한 인물 중에선 전·현직 법조·법학계 인사가 14명으로 가장 많았다. 이밖에는 시의회 의원 1건, 공무원이 4건이었다. 19건 중 부모 등 신상 기재를 금지한 전형요강을 위반한 경우는 7건이었다.

교육부는 자교 로스쿨 교수 자녀(10명)나 기타 교직원 자녀(27명)가 입학한 점도 확인했다. 하지만 모두 이해관계인 전형 과정에서 배제하는 제척·회피제를 준수했기 때문에 문제없다고 판단했다. 교육부 관계자는 “이번 조사에서는 ‘자기소개서’만 중점적으로 봤다. 교직원 사이의 ‘로스쿨 입시 청탁’ 문제에 대해서는 수사기관의 수사 결과를 보고 감사 여부를 정하겠다”고 말했다.

적발된 자기소개서 가운데 교육부가 ‘부정행위 소지’가 있다고 판단한 경우는 경북대, 부산대, 인하대, 제주대, 충남대, 한양대 등 6곳에서 나온 자기소개서 8건 뿐이다. 부모 등의 신상기재 금지 규정을 두고도 어긴 경우만 부정행위에 해당할 여지가 있다는 이유다. 나머지 16건의 의심사례가 확인된 대학(경희대, 고려대, 동아대, 서울대, 연세대, 원광대, 이화여대)에는 아예 관련 규정이 없었다. 규정이 없으니 부정행위가 아니라는 논리였다.

교육부는 자기소개서 기재 금지 규정을 어긴 사례가 적발된 6개 대학에는 입학전형의 공정성을 소홀히 한 사유(법전원법 제23조)로 기관경고, 관계자 문책 등 행정 조치를 하기로 했다. 기재 금지를 고지하지 않았지만 신상이 기재된 7곳에는 기관 경고 및 주의 조치를, 문제가 된 자기소개서는 없었지만 기재를 금지하지 않은 건국대, 영남대, 전북대에는 시정 조치와 로스쿨 원장 주의 조치를 하기로 했다. 불공정 입시 논란의 실체가 드러났지만 이번 전수조사로 실질적인 불이익을 받는 로스쿨은 없는 셈이다. 정원감축이나 폐쇄 등의 실질적인 조치는 경고 등의 행정조치를 받고도 문제를 시정하지 않을 경우에만 취할 수 있다.

전수민 기자 suminis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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