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 드라마 ‘욱씨남정기’에 등장하는 한영미 과장이라면 5월6일 임시공휴일이 어떨까 생각해 봤습니다. 아마도 한 과장은 퇴근 후 아이의 가정통신문을 보곤 경악했을 겁니다. 5월6일 어린이집이 휴원 공지가 있을테니 말이죠. 한 과장이 다니는 회사는 중소기업으로 정부가 지정한 임시 휴무에 동참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5월5일 어린이날까지 출근해야 합니다. 가정의 달 마케팅으로 그 어느 때보다 바쁘기 때문이죠. 옥다정 본부장에게 나흘 중 하루만이라도 쉬게 해달라고 애원해 볼까 고민해 보지만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습니다. “당신만 애 키웁니까?” 라는 핀잔이 돌아올 게 뻔하니까요.
아이를 봐주는 시어머니는 친목계에서 떠나는 제주도 여행에 한껏 들떠 있습니다. 못 쉰다고 말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휴일만이라도 육아에서 해방되고 싶다는 시어머니의 말도 일리가 있습니다. 이럴 때 기댈 곳은 남편밖에 없다는 생각에 전화를 걸어 운을 떼봅니다. 그러자 남편 왈 “법정공휴일인 어린이날까지 일을 시키는 회사를 노동청에 고발하던지 1명이라도 수요가 있으면 당번 교사를 배치해야 하는 어린이집을 보건복지부에 신고하는 게 맞지 않냐?”말로 남 얘기하듯 합니다. 언제부터 그렇게 정의로우셨는지 모르겠군요. 역시 남편은 남의 편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닙니다. “몰라서 못하는 게 아니라 보복 당할까 봐 겁나서 안 하는 거다”라고 쏘아붙이곤 전화를 끊어버립니다. 자리에 앉아 일일 보모 섭외에 열을 올리는 한 과정은 대책 없는 휴무에 열이 받습니다.
지난주 5월 가정경제 파탄의 달로 시작한 맘편뉴스가 이번 주엔 일주일 만에 ‘쓱’ 임시공휴일을 지정한 정부 때문에 뿔난 엄마들의 목소리를 담아보려 합니다. 맘카페를 가보니 안 그래도 잔인한 달 5월이 올해는 잔인함을 넘어 참사에 가깝다는 불만이 쏟아지고 있더군요.
5월1일 노동의 날은 일요일이었습니다. 학교나 공공기관이 쉬지 않지만 근로자는 쉬는, 그래서 근로자인 게 좋았던 유일한 날인데 그날이 마침 일요일이라니 우울하기 그지없습니다. 거기에 5월6일을 임시공휴일로 지정한다는 소식까지 듣고 나니 화가 치밉니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중소기업 350곳을 대상으로 임시공휴일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 한 결과 휴무에 참여한다는 업체는 36.9%에 불과했습니다. 취업 포털사이트에서 시행한 설문조사 결과도 비슷했죠. 5월6일 근무를 하는 근로자 중 대기업 종사자의 비율은 18.8%로 적은 반면 중소기업 종사자는 30.7%로 많았습니다. 여론조사전문기관인 리얼미터가 진행한 설문조사도 6일 임시공휴일 지정을 반대한다는 의견이 46.4%로 찬성한다는 의견 41.6%보다 높았습니다.
임시공휴일은 법정공휴일이 아니어서 관공서나 공공기관, 학교 등 공공부문에만 의무 적용됩니다. 민간기업의 시행 여부는 자율에 맡기는 거죠. 그러다보니 절반 정도의 직장인만 쉬게 됩니다. 소규모 기업은 정상근무를 하는 경우가 많죠. 아이가 있는 가정의 경우 부모는 출근하는데 아이는 집에 있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습니다.
한 과장처럼 일하는 엄마들만 임시공휴일에 불만이 있는 건 아닙니다. 일하지 않는 엄마도 불만이 생기긴 마찬가집니다. 아이를 맡길 곳이 없어 전전긍긍하는 건 아니지만 나들이 떠나는 가족들의 모습을 보는 마음이 썩 좋지 않죠. 남들 쉬는 날까지 독박육아를 해야 하는 자신의 처지가 안쓰럽습니다. 이런 날 조차 집에 있어야 아이를 생각하면 미안하기까지 하죠. 그렇다고 혼자 아이를 데리고 나가자니 엄두가 나질 않습니다. 덕분에 여느 날보다 남편의 퇴근시간을 더 눈 빠지게 기다리게 됩니다.
정부는 내수 활성화와 소비 진작을 위해 임시공휴일을 지정한다고 했습니다. 그리곤 고속도로 통행료 면제를 비롯한 각종 혜택을 준다고도 했죠. 하지만 서민들에겐 그림의 떡일 뿐입니다. 임시공휴일로 인한 기쁨보단 상대적 박탈감에 설움만 커지는 실정입니다. 일주일 만에 ‘쓰윽~’ 결정한 데다 법정공휴일로 지정한 게 아니어서 누구는 쉬고 누구는 일하는 반쪽짜리 휴무일이 됐기 때문입니다.
신의 직장이라 불리는, 계약서에 ‘갑’으로 표기되는 회사 직장인들은 황금연휴 계획을 짜느라 행복한 비명을 지르고 있습니다. 반면 ‘을’이나 ‘병’으로 표기되는 회사에 근무하는 직장인들은 며칠 안 되는 좋은 날마저 빼앗긴 기분마저 듭니다.
“돈 없는 것도 서러운데 쉬지도 못 한다”
맘카페에 올라온 이 하소연이 많은 공감 댓글을 받은 이유도 이런 이유 때문일 겁니다. 정부가 고단한 국민에게 조금의 ‘쉼’을 주고 싶어 임시공휴일을 지정하는 거라면 미리 정하던지 아니면 누구나 다 쉴 수 있게 강제해야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지 않으니 6일이 서민들에겐 억울한 공휴일이 된 거죠. 이런 상황이 반복되면 사회 계층 간 갈등의 골이 깊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정부는 간과해선 안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