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을 맞아 일에서 쫓겨났을 때, 노년은 갑작스럽게 느껴진다. 평생 시간에 쫓기면서 시간의 노예로 살아온 탓에 이제 그 시간에 해방되었음에도 전혀 해방감을 느끼지 못한다."(12쪽)
올해로 등단 41년이 된 현기영(75) 소설가가 14년 만에 세 번째 산문집 ‘소설가는 늙지 않는다’(다산책방)를 냈다.
2002년부터 2016년까지 틈틈이 써오고 발표해온 산문 37편을 묶었다. 새 산문집에서 “싸우는 동안 증오의 정서가 필요”했던 소설가는 노년을 지나면서 “이제는 비극에 서정과 웃음을 삽입하는 일을 꺼려서는 안 되겠다”고 고백한다. 또 “사랑이라는 두 글자” 앞에 머리를 조아려 사과를 한다”고 말한다.
책에는 늙음을 접하면서 오는 인간으로서의, 소설가로서의 슬픔, 상실감과 또 그것을 받아들이며 생기는 변화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노경에서 누릴 수 있는 즐거움들이 적지 않은데, 그 중 제일 큰 것이 포기하는 즐거움이라는 대목에서는 가슴이 찡해진다. “이전 것들에 너무 아등바등 매달리지 않고, 흔쾌히 포기해버리는 것을 즐거움으로 받아들이고 얼굴은 주름 잡혔지만 심장만은 주름살이 생기지 않는 그러한 자유로운 삶”을 페이지마다 눌러 적었다. 그래서 표제는 ‘소설가는 늙지 않는다’이다.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
'늙은 소설가' 현기영이 말하는 명퇴를 맞이하는 지혜
입력 2016-05-01 2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