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오페라단의 ‘루살카’는 김학민 단장의 야심작이다. 지난해 취임한 김 단장이 이번 시즌 기획과 제작에 직접 참여한 첫 신작으로 연출까지 맡았기 때문이다. 개막을 앞두고 열린 기자간담회에서는 국내 스태프로만 크리에이티브팀을 꾸렸다는 것을 과하다 싶을 만큼 강조하기도 했다.
지난 28일 베일을 벗은 ‘루살카’는 김 단장의 의욕과 욕심이 두드러진 무대였다. 연출력에 대해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 공연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것을 쏟아부은 흔적이 역력했다. 무대 막으로 영국 화가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의 그림 ‘인어’를 활용함으로써 체코판 인어공주 이야기인 ‘루살카’를 미리 설명하는 등 곳곳에 공을 들인 게 보였다. 덕분에 국내 초연인 낯선 오페라를 일반 관객이 받아들이는데 무리가 없었다.
하지만 최근 오페라에서 가장 중시되는 연출가의 해석과 무대 미장센에서는 상당한 아쉬움이 남는다. 김 단장은 루살카가 원래 살던 자연은 순수하고 따뜻한 데 왕자가 사는 인간세상은 타락하고 냉혹하다는 이분법으로 작품을 분석했다. 의상이나 무대의 색조도 1막과 3막에선 흰색, 파란색, 녹색을 쓰다가 2막에선 검은색과 빨간 색을 사용함으로써 자연과 인간세계를 대조적으로 그려냈다.
‘루살카’가 국내 초연이니만큼 그는 새로운 것을 시도하기 보다는 드보르자크의 음악에서 연출을 끌어내겠다고 했다. 하지만 그의 도식적인 해석은 작품을 쉽게 이해하게 만들긴 하지만 복잡미묘한 캐릭터를 단순화시킴으로써 작품의 재미를 반감시키고 있다. 게다가 음악이나 아리아의 가사에서도 분명히 드러나듯 루살카는 인간세상만이 아니라 자연에서도 버림받는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루살카가 자연과 다시 하나가 되는 결론을 이끌어냈다. 3막의 마지막 부분에서 무대 위에 비를 내리게 함으로써 말라버린 호수가 다시 회복되는 것을 암시한다.
그런데, 연출가의 해석이야 관객마다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다고 치더라도 미장센은 너무나 아쉽다. 전체적으로 무대와 의상, 소품 등을 화려하게 만들었지만 통일성이 떨어지고 세련미가 부족했다. 무대를 가득 채우기에 급급해 여백을 느낄 틈이 없었다.
우선 1막에서 인어들이 호수를 헤엄치는 장면을 플라잉으로 보여주는 시도 등은 흥미롭긴 했지만 드라마와 음악을 방해하기도 했다. 예를 들어서 루살카가 부르는 유명한 아리아 ‘달에게 바치는 노래’를 좀더 고요한 분위기 속에서 부르도록 했다면 그 맛을 더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
작품에서 가장 안타까운 부분은 2막이다. 타락한 인간세상을 보여주는 왕자의 궁전은 새빨간 사각의 건물로 묘사되어 있고, 사람들은 빨간 색과 검은 색의 선정적인 의상을 입고 등장한다. 1막이나 3막에 비해 구별되지만 전형적인 장면을 만들어내는데 그치고 말았다. 특히 애매모호한 난교 장면을 굳이 넣을 필요가 있었나 의문이다. 사람들이 루살카에게 인형을 던지는 장면의 경우 인간이 아니어서 아기를 낳을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장치지만 2막의 안에서 다소 작위적으로 보인다. 이에 비해 3막은 그나마 무대 장치나 연출 의도가 과하게 드러나지 않은 채 성악가들의 노래에 집중할 수 있도록 했다.
아쉬웠던 연출에 비해 출연 성악가들은 제몫을 다한 편이다. 반주를 담당한 정치용 지휘의 코리아 쿱 오케스트라가 드보르자크의 선명한 음악을 만족스럽게 전달했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이번에 국내 데뷔였던 루살카 역의 소프라노 서선영과 왕자 역의 테너 권재희는 좋은 가창력을 보여줬다. 권재희의 경우 체코어에 대한 부담과 다소 작은 성량 때문에 초반엔 위축돼 보였지만 점차 극에 동화되는 모습이었다. 서선영의 경우 루살카의 절실한 감정을 풍만한 성량으로 뽑아내 박수갈채를 받았다. 다만 물의 요정인 만큼 연기면에서 시종 격정적이기보다는 섬세한 떨림이 보였다면 좀더 좋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은 남는다.
국립오페라단의 ‘루살카’는 이번에 관객과 평단을 주목을 받으며 흥행도 좋은 성적을 기록했다. 다만 첫 시험대에 올랐던 김 단장은 연출력에 대한 의문부호를 아직 종식시키지는 못했다.
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
[리뷰]국립오페라단 '루살카', 연출의 '과유불급'이 안타까웠다
입력 2016-05-01 10:46 수정 2016-05-01 1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