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베트남인데 아들이 빚 2760만원을 갚지 않아 잡고 있다.” 김모(67·여)씨는 지난 27일 오전 10시30분쯤 한 남성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수화기 너머로 “엄마, 출근 중 잡혀왔어요”라는 다급한 목소리와 ‘퍽’하는 소리, 비명소리가 뒤섞여 들려 왔다.
아들은 베트남에서 일하는 중이었다. 김씨는 당황했다.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고 한다. 이 남성은 “아들 죽는 걸 보고 싶지 않으면 1500만원을 입금하라”고 했다. 수중엔 이사를 가기 위해 마련해둔 1100만원뿐이었다. 다급한 마음에 경북 영주에서 농장을 경영하는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무 것도 묻지 말고 일단 1200만원을 보내줘요.”
남편 김모(73)씨는 평소와 다른 아내의 모습에 이상한 낌새를 차렸다. 전화를 끊자마자 112에 신고를 했다. 사건은 아내 김씨가 살고 있는 서울 은평경찰서 불광지구대로 떨어졌다.
불광지구대 안성일 순찰2팀장은 김씨 집과 휴대전화로 연락을 했다. 둘 다 통화 중이었다. 혼자 사는 김씨가 집 전화와 휴대전화로 모두 통화를 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안 팀장은 보이스피싱을 직감했다. 김씨 집에 가보니 집 전화의 수화기가 전화기 옆에 내려져 있었다. 다른 사람과 통화하지 못하도록 집 전화 수화기를 내려놓게 하고, 휴대전화로 계속 연락을 취해 불안감을 조장하는 전형적 보이스피싱 수법이다.
경찰은 ‘김씨 찾기’에 나섰다. 휴대전화 위치추적으로 확인이 안 되자 김씨의 주거래은행인 농협 지점과 주변 13개 은행을 돌았다. 하지만 찾을 수 없다.
이 때 김씨는 범인들의 지시를 충실하게 따르고 있었다. 그 남성은 신한은행에 가서 국민은행 계좌로 550만원을 보내고, 농협에 가서 IBK기업은행 계좌로 550만원을 입금하라고 했다. 국민은행에서 오후 12시10분쯤 입금을 마치고 바삐 걸음을 옮겨 오후 1시10분쯤 농협은행에 도착했다. 은행 직원은 경찰이 말한 김씨임을 알아챘다.
경찰이 도착했을 때 김씨는 넋이 나간 표정으로 550만원이 든 가방을 꼭 쥔 채 대기석에 앉아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고 한다. 경찰은 김씨에게 다가가 ‘보이스피싱’임을 알리고 피해금액을 확인했다. 이미 550만원을 입금했다는 얘기에 바로 지급정지를 요청하기도 했다.
김씨는 지구대로 가면서도 보이스피싱임을 느끼지 못했다. “경찰관님들과 남편이 잘못 알고 있는 거예요. 빨리 입금해야 아들이 풀려나고 그래야 회사에서도 안 잘리는데.”
오후 1시50분쯤 아들과 연락이 닿고서야 김씨는 한숨을 내시고는 하염없이 울었다. 김씨는 “경찰은 높은 사람만 상대하고 밑에 있는 사람은 막 대한다고 생각해왔어요. 이번 일로 경찰에 대한 생각이 바뀌었어요. 돈도 돈이지만 보이스피싱에 당하는 할머니를 위해 신경써준 경찰관들에게 고마워요”라고 했다.
박은애 허경구 기자 limitless@kmib.co.kr
[단독] “베트남 사는 아들 빚 대신 갚아라”…퍽 소리와 함께 비명이…
입력 2016-04-29 17:50 수정 2016-04-29 17: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