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비군 훈련, 지옥같았던 선임을 다시 만났다

입력 2016-04-30 00:03 수정 2016-05-01 08:08

올해로 예비군 3년차인 A씨(24)는 선임이었던 김모(26)씨에 대해 “그와 함께한 시간은 지옥 같았다”고 했다. A씨는 2013년에 김씨와 4개월가량 같은 부대에서 생활했다. 오래전 일이었지만 A씨는 김씨를 잊지 못했다.

잊을 수 없지만 잊고 싶은 기억

A씨는 “당시 병장이었던 그는 나를 장난감 취급했다. TV에서 음악방송이 나오면 걸그룹 춤을 따라서 추게 한 뒤에 못 추면 욕을 했다”며 “간부들이 볼 수 없는 곳에서 때리거나 욕설을 했다. 하지만 곧 떠날 사람이라고 생각해 참고 버텼다”고 말했다. 이어 “자면서 코를 골자 베개를 던져 깨운 뒤 방독면을 쓰고 자라고 하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화생방 상황에 대비하기 위한 물품인 방독면을 쓰고 자면 코고는 소리가 들리지 않지만 착용한 사람은 숨을 쉬는데 어려움을 느낀다.

또 A씨는 김씨의 빨래나 전투화 세척, 관물대 정리 등 잡다한 일을 모두 다 처리했다고 전했다. 빨래, 전투화 세척 등을 후임 병사가 하는 것은 관습처럼 내려오는 병영부조리의 하나다. 시간이 흘러서 두 사람 모두 전역을 했다. 하지만 A씨는 잊고 지내다가 군대 꿈이라고 꾸면 어김없이 ‘김 병장’이 나타나 괴롭힌다고 호소했다.

그러던 지난 19일 A씨는 꿈에서라도 마주치기 싫은 김씨를 다시 만났다. 3년 만에 두 사람이 만난 곳은 자신들이 군생활을 했던 부대였다. A씨가 소집된 동원훈련에 김씨도 왔던 것이다. 두 사람이 있었던 부대는 특수한 목적을 수행하는 부대였기 때문에 전역 예비군들은 동원훈련을 받으러 원래 부대로 가야 한다. 두 사람뿐만 아니라 함께 군 생활을 했던 선·후임들이 모두 모였다. A씨는 대학교를 다니던 지난 2년 동안은 학생예비군이라 이 부대에 오지 않았었다.

A씨는 2박3일 동원훈련을 받으며 다시 악몽 같은 일을 겪었다. 그는 “아무렇지 않은 척 말을 건네며 그 당시 일을 농담처럼 얘기하는 A씨를 보며 화가 났다”며 “식사시간이나 휴식시간에도 웬만해서는 마주치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고 했다. 내년까지 동원훈련 대상인 그는 동원훈련에 참석하지 않을 생각이다. A씨는 “공무원 시험을 신청하든 다른 훈련을 받든 동원훈련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을 쓰겠다”고 했다.

이런 일은 A씨만의 사례는 아니다. 이 부대 출신의 예비군 4년차 이모(25)씨는 아예 올해 동원훈련에 참석하지 않았다. 지난해 동원훈련에서 망신을 당했기 때문이다. 그는 “군 시절에 유격훈련을 받다가 내가 거짓말을 하고 열외됐던 일로 틈만 나면 선·후임들이 놀리는 것을 참기 어려웠다. 지난해 동원훈련 2박3일 동안 왕따가 된 것 같았다”고 했다.

동원훈련이 뭐길래

병역의 의무를 수행하다 보면 군대 선임과 후임 간의 갈등은 비일비재하다. 군 생활에서 쌓인 앙금을 풀지 못한 채 전역하는 경우도 많다. 전역을 하고 민간인 신분이 됐지만 동원훈련에서 서로 마주치면 좋지 않았던 기억이 재연될 수밖에 없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동원훈련은 예비군 훈련을 실시하는 부대에서 필요한 특기 등을 병무청에 요청하면, 병무청에서는 필요한 동원인력을 분류한다. 배정지역은 어떤 부대에서 군 생활을 했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병무청 관계자는 “유사사태가 발생했을 때 병력수송이 용이한 지역으로 병력을 보내야 하기 때문에 현재 거주지역 등을 고려해 동원훈련에 배치한다”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같은 부대에 있었던 선임이나 후임이 마주치는 경우는 무척 드물다. 군 생활을 했던 부대 혹은 선·후임들과 함께 동원훈련을 받기 위해서는 서울, 경기, 강원 등 전방지역에 한정해 ‘현역복무부대 동원지정’을 신청했을 때 가능하다. 군 생활을 같이 했던 사람들끼리 오랜만에 만나자는 취지로 동원훈련을 함께 받으려고 신청하는 경우가 많다.

이외에 현역병사로 군 생활을 할 때 ‘연고지 복무’ 제도를 신청하는 경우가 있다. 경기, 강원 등 전방지역에선 부대가 거주지 근처에 있는 경우 인근 부대에서 군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우선권을 준다. 연고지 복무제도의 경우 거주지에서 같은 부대로 온 사람들이 많을 수 있다. 동원훈련도 같은 부대에서 받을 확률이 높아진다.

마지막으로 특수한 부대에서 군 생활을 한 경우에 동원훈련을 같이 받게 된다.

동원훈련은 훈련 5일 전까지 몸이 아프다거나 공무원 시험일과 겹친다 등의 이유로 연기가 가능하다. 해당 기간이 지나서 사유 없이 무단으로 불참했을 때엔 고발을 당해 벌금을 내야 한다. 정당한 사유로 동원훈련을 불참했을 때는 지역에 소속된 동사무소 혹은 소속기관에서 6시간가량 교육을 받는 항방작계 훈련과 지역의 예비군 부대에서 3일간 출·퇴근 형식으로 진행되는 동미참 훈련을 받아야 한다.

홍석호 기자 wil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