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하라는 거 다 했는데 한센인까지, 정말 빡세게 시키셨어요”…스타인헤븐

입력 2016-04-29 13:25 수정 2016-04-29 14:10
사단법인 '희망의 망고나무' 이광희 대표. 희망고 제공

세계 최빈국인 아프리카 남수단 톤즈에 중요한 식량원인 망고나무를 심어 희망을 주었던 사단법인 ‘희망의 망고나무’(희망고)가 그곳에서도 더욱 소외된 한센인 마을 돕기에 나섰다. 희망고는 오는 5월 2,3일 서울시 용산구 소월로에 위치한 이광희 부티크에서 ‘남수단 톤즈에 내리는 희망의 단비’라는 제목으로 바자회를 연다. 수익금은 톤즈의 한센인 마을 유치원 건립을 위해 쓰인다.

남수단 톤즈에 희망고를 설립한 패션디자이너인 이광희(64) 대표를 22일 이광희 부티크에서 만났다. 2009년 배우 김혜자와 남수단을 처음 방문하고 국제사회의 도움이 절실한 곳임에도 도움이 미비한 상황을 보고 2011년 10월 국제 NGO 인가를 통해 희망고의 정식 활동을 시작했다. 톤즈 안에서도 마을 사람들에게 배척되고 소외된 한센인들을 어떻게 보듬게 됐을까.

이 대표는 “매년 톤즈를 갔는데 2014년에 양쪽 무릎 수술을 해서 못 갔다”며 “1년 동안 톤즈를 못 가고 치료를 받았는데 저 대신에 직원이 출장을 다녀왔다. 그때 제가 ‘내가 못 가는 대신 그 지역에서 우리가 돌보지 못한 어려운 사람이 누가 있는지 찾아보라’고 했다. 그 직원이 출장을 다녀와서 가지고 온 사진이 한센인 사진이었다”고 말했다.

전쟁영화도, 평소에 조그마한 상처도 보지 못하는 이광희 대표는 처음엔 한센인 사진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사진을 제대로 보지도 못하고 ‘우린 마을 자립을 위한 NGO지 의료사업을 하는 데가 아니니까’ 하면서 사진을 치웠다고 한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며 덮어뒀다.

하지만 잊어버릴만하면 사진 속 한센인들이 떠올랐다. 그는 “손님이 와서 이야기를 하다가도 사진 속 사람들이 떠올라 울컥 눈물이 났다”며 “하루 종일 울고 다녔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러면서 눈시울이 다시 붉어졌다.



그러다가 기이한 일이 일어났다. 2014년 12월 어느 날 새벽에 잠에서 깬 이광희 대표가 생각만 하면 눈물이 나는 한센인들을 어찌할지 몰라 걱정하고 있었다. 그때 기도와 묵상 중에 사진 속 한센인들이 이 대표의 가슴에 팍팍 안겼다. 남편까지 “한센인까지는 하지 말아라”고 말렸지만 이 대표는 이 체험을 하고 한센인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졌다. 그리고 “하나님 하라는 거 다 했는데, 한센인까지 정말 빡세게 시키신다”며 하나님께 순종하고 두 달 뒤인 2015년 2월에 한센인을 보러 갔다.

이광희 대표는 톤즈의 한센인 마을에 도착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조사부터 했다. 당시에 정부와 타 NGO 단체의 지원도 배제된 상태였고 약 600여명의 주민이 살고 있었다. 가장 먼저 이들에게 식량과 의료약품 지원을 시작했다. 현지 의료선교단체와 연합해 전염을 막기 위한 계획을 세웠다. 그리고 나서 보니 한센인 부모 밑에서 자라고 있는 아이들이 눈에 띄었다. 한센인 마을의 50%를 차지하는 아이들이 공부하고 놀 수 있는 유치원이 필요했다.

이 대표는 “유치원이 시급했다”며 “아이들이 많았는데 한센인 부모와 오래 같이 지내고 살다 보면 부대끼고 다치면 병이 상처로 옮겨진다. 부모와 떨어져서 깨끗한 공간에서 아이들이 공부하고 놀 수 있기를 바랐다”고 했다. 발 빠르게 유치원 부지를 확보했고 설계도도 나온 상태다.

어떻게 이런 일을 감당할 수 있냐는 질문에 이 대표는 자신도 모른다고 했다. 그는 “제가 뭘 하려고 해서 여기까지 왔을까요?”라고 되물었다. 그는 “누구도 가기 어려운 곳에 우리라도 희망을 심어주자는 뜻에서 희망고를 시작했다”며 “톤즈에서도 버림 받은 사람들인 한센인을 희망고에 맡겨주셨으니 순종할 뿐”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어머니가 생전에 주신대로 받으라는 말씀을 많이 하셨다”며 “하나님의 뜻인지 제가 감히 알 수 없지만 상황이 주어지면 나에게 닥친 일이라고 받아들이려고 한다”고 전했다. 이광희 대표의 부모는 故 이준묵 목사와 故 김수덕 사모다. 두 사람은 한국전쟁 직후 해남에 전쟁고아들을 위한 ‘해남등대원’을 설립한 것을 시작으로 농민 기술교육을 위한 ‘삼애학교’, 양로원 ‘평화의 집’ 등을 세워 평생 봉사의 삶을 살았다.

■ 이광희 대표는 이화여대 비서학과 졸업 후 국제패션연구원을 수료하고 1985년 이광희 부티크를 열었다. 1987년 드라마 ‘사랑과 야망’에서 배우 원미경이 그가 디자인한 옷을 입으면서 당시 ‘이광희 패션’이 화제를 모았다. 역대 영부인을 비롯해 정·재계 사모님들과 문화계 인사들이 옷을 맡기는 국내 대표 디자이너다.

조경이 기자 rookero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