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바오의 굴욕… 대만서 동상 건립 하루만에 철거 위기

입력 2016-04-29 00:29
27일 대만 북부 지룽시의 한 민간 묘지공원에 세워진 원자바오 전 중국 총리 동상. 명보

원자바오 전 중국 총리의 동상이 하루 만에 철거될 위기에 처하는 굴욕을 당했다. 냉랭한 중국과 대만의 분위기가 반영된 모습이다.
 홍콩 명보 등에 따르면 27일 대만 북부 지룽시의 한 민간 묘지공원에서 원자바오 동상 제막식이 열렸다. 원자바오가 오른 손에 신발 한 켤레를 들고 맨발로 서 있는 형상이다. 발 바로 밑에는 ‘대만 영웅’이라는 제목이 붙어 있고, 중앙에는 ‘조화’라는 의미의 글자 ‘허셰(和諧)’ 크게 적혀 있다. 좌우로는 ‘양안 평화 유지, 무역교류 확대’ ‘대륙인 관광 개방, 대만 정책 우호’ 라는 글이 새겨졌다.

 
동상 건립에 나섰던 광고회사 ‘지우징’의 린쿤밍 대표는 “대만에 대한 사랑을 보인 이는 모두 대만 영웅이며 원 전 총리가 양안 무역과 투자를 개시해 많은 일자리를 창출했기 때문에 대만 영웅으로 불릴 자격이 있다”고 강조했다. 공원 소유주 천전펑도 “모든 강과 하천을 수용하는 바다처럼 열린 자세를 가질 필요가 있다”고 강조하면서 “국적과 피부색, 문화적 배경에 관계없이 방문자들이 즐겁게 공원을 방문하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원자바오는 2008년 마잉주 대만 총통 당선 이후 이듬 해 3월 공식 석상에서 “대만 곳곳을 둘러보며 대만 동포들을 만나고 싶다. 거동이 불편하면 기어서라도 가고 싶다”며 대만과의 관계 개선에 강한 의지를 보였다. 두달 후 대만과 해협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있는 푸젠성 샤먼을 시찰하며 기자들에게 대만 진먼다오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원자바오 재임 당시 양안 관계는 더할 수 없는 밀월기였다.

 하지만 현재는 상황이 변했다. 중국에 대한 대만 국민들의 불만이 커져가고 대만 독립 성향의 민진당 소속 차이잉원 후보가 지난 1월 총통으로 당선되면서 양안 관계는 급속히 냉각됐다. 원자바오 동상에 여론이 안 좋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민진당 소속 린여우창 지룽 시장은 “전 중국 지도자를 대만 영웅으로 소개하는 것이 부적절하다”며 공원 운영자에게 동상을 즉각 철거하라고 지시했다. 하지만 일부 네티즌 사이에서는 “개인 사유지에 설령 김정은의 동상을 세운다 해도 그것은 개인의 자유”라는 옹호론도 나오고 있다고 명보는 전했다.

베이징=맹경환 특파원 khmae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