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표 교수 연극이야기] 36. 역사의 무게를 진지한 웃음으로 비튼 ‘보도지침’

입력 2016-04-28 06:22
연극 ‘보도지침’과 저항의 역사



5공 시절 언론을 통제했던 ‘보도지침’을 다룬 연극한편이 30년 만에 현실 밖으로 연극으로 그려지면서 관객 반응이 뜨겁다. 오세혁 작가가 쓰고 변정주가 연출한 연극 ‘보도지침’(6월19일까지·수현재 씨어터)이다. 5공 시절에는 언론사 팩스로 하달되는 뉴스의 검열이 존재했다. 이른바 보도지침이다. 1986년 한국일보 김주언 기자는 1985년 10월부터 1986년 8월까지 문화공보부가 각 언론사에 팩스로 보낸 584개의 보도지침이 담긴 문건을 제공하고 그해 월간 ‘말’은 9호로 보도지침-권력과 음모’라는 제목을 달고 당시 권력에 의해 보도가 조작되고 언론의 자유가 훼손되고 있는 현실을 폭로하면서 세상으로 알려졌다.

1980년대는 독재정권 타도를 외치며 민주주의 대한민국을 위해 대학생들은 거리로 뛰쳐나왔다. 최루탄이 아스팔트를 뒤 덥고 한 도시를 집어 삼켰던 시절이었다. 대학 캠퍼스는 사복경찰들과 대학생들이 뒤섞여 캠퍼스를 점령했다. 보도지침으로 시대의 저항정신과 진실의 소리는 하늘을 뚫지 못한 채 허공에 맴돌아 있다.



작가 오세혁은 이 뜨거운 80년대 5공화국 시대의 보도지침의 모티브를 오늘날 시계로 돌려놓는다. 매일 팩스로 하달되는 보도지침은 오늘날 존재하지 않지만 “묵시적인 내면의 자율적인 지침으로 진실은 훼손되지 않는가”, 또는 “저항으로 쓴 민주주의 역사의 시대정신의 동지들은 여전히 유효 한 것인가”라는 시선을 응집 시킨다. 보도지침이 존재하던 80년대는 뜨거운 저항의 역사이다. 진실 된 시대를 원하던 역사, 민주주의 대한민국으로 되돌려 놓기 위해 독점화 된 권력에 저항했다. 시민과 대학생들은 뜨거운 가슴으로 최루탄이 터지는 거리 한복판으로 터져 나와 분노에 몸을 던지고 저항하며 쏟아낸 핏물은 거리와 아스팔트 위에 스며들어 성숙한 대한민국 민주주의 지도를 그려냈다. 시민들은 빛이 내려쬐지 않는 시대에 저항하면서 대한민국 사회는 6월 항쟁을 통해 6·29 민주화 선언을 이끌어 냈다. 그리고 오늘날 대한민국 한복판을 숨을 쉬며 걷고 있다.



당시 월간 ‘말’의 발행인과 김주언 기자 등 6명은 이 사건으로 국가보안법 위반 및 국가모독죄로 구속됐다. 일부 언론인 3명은 87년 6월에 집행유예로 풀려났고, 김주언 기자에게 내려진 징역 8월 자격정지 1년 집행유예 1년의 선고는 94년 7월5일에 이르러서야 무죄판결로 확정됐다. 1987년 1월 정보기관에서 조사를 받던 박종철 고문사망 사건은 시대의 충격 이였다. ‘탁하고 치니 억하고 쓰러졌다’는 비상식적인 죽음논리는 권력의 은폐와 조작 논란 으로 이어져 권력의 심장부를 향한 국민 분노로 휩싸였다. 거리로 나온 시민, 대학생들의 강렬한 저항의 외침으로 그해 6월 항쟁으로 이어졌고, 대한민국사회는 6·29 민주화 선언을 이뤄내면서 보도지침은 역사의 시간으로 멈춰 섰다.



‘연극은 시대의 정신’으로 무장한 오세혁의 조롱과 웃음으로 섞인 풍자



헬(hell) 조선으로 한국사회를 조롱의 눈빛으로 바라보고, 대한민국을 흔들었던 대형사건들은 뉴스를 통해 전파를 타면서도 시민의 눈과 귀는 여전히 개운하지 않다. 진실성이 모호해진 것이다. 오세혁은 ‘연극정신으로 진실성을 연대하고 유쾌한 놀이로 저항’하며 이 빈틈을 비집고 들어가 오늘날로 투영한다. 무대는 오세혁 특유의 놀이적인 무대로 전환될 수 있도록 보도지침 사건을 재판하는 재판장, 논쟁의 광장, 마음을 고백하는 진실의 극장으로 장면전환이 될 수 있도록 열린 무대로 전환한다. 무대 좌·우에 널찍한 책상과 의자를 가변적으로 배치하고 상단에는 재판장석으로 공간을 이원화 한다. 개방적인 무대는 브레히트 적으로 열어 놓고 역사의 시공간을 놀이로 넘나든다. 오세혁 특유의 입담은 유쾌함으로 구성을 튼튼하게 설계해 놓고 연출은 웃음의 강렬한 진실성으로 무장하고 보도지침을 오늘날로 건축한다.



연극의 모티브는 80년대 보도지침의 역사를 연극적으로 무장해 소환한다. 김주언 기자는 극중 인물 주혁(송용진 분)으로 분하고 월간 말은 ‘독백’으로 환기된다. 첫 장면은 정배(안재영 분)와 주혁이 외신기자들 앞에서 문건을 들고 보도지침을 폭로하는 기자회견장으로 전환된다. 객석에서 튀어나온 여자(박민정 분)는 무대를 기자회견장으로 돌려놓는다. 관객은 역사의 진실성을 폭로하는 장면을 마주하면서 마치 시민참여재판을 형성시킨다. 연극은 이들이 증언하는 역사의 초침을 따라 진실의 외침이 갈라져 가는 장면을 형성하면서 80년대 진실 된 함성의 저항의식은 빛이 바래진 기억으로만 존재 한 채 오늘의 삶을 그려내고, 보도지침은 여전히 ‘역사의 기억으로만 존재 하는가’라는 시선으로 바라본다.



기자회견장은 외신기자들만 있을 뿐 국내 기자들은 단 한명도 취재 현장에 오지 않아 ‘대한민국은 목소리가 퍼져나가지 않는 진공상태’라고 여자는 소리를 높인다. 여전히 언론의 자유는 훼손되어 있고 진실은 모호한 실종 상태 현상으로 보도지침을 연극적으로 돌려놓는다. 주혁과 정배가 폭로한 584개의 보도지침의 문건은 두 사람의 진실을 향한 외침으로 강타하면서 무대는 법정으로 전환된다. 30년 전 보도지침의 문건 내용은 ‘기사의 크기, 편집의 배치, 제목, 사진배열’ 등 기자가 취재한 기사를 세상 밖으로 내보내기 전에 철저한 검열과 통제가 이루어졌다. 뉴스의 비중과 가치는 권력에 의해 훼손되고 진실은 권력에 의해 은폐와 축소됐다. 기사는 절대불가, 불가, 가로 표기되어 철저하게 편집됐다.



이 폭로문건을 다룬 연극 보도지침이 관객에게 뜨거운 시선을 끌 수 있는 것은 ‘오늘날의 언론의 자유는 통제를 받지 않은 채 여전히 자유롭게 숨을 쉬며 대한민국 한복판을 움직이고 있는가?’라는 다소 묵직한 질문을 유쾌한 연극정신으로 무장한다. 작가 오세혁 특유의 조롱은 극중 풍자로 설계되고 연출은 웃음으로 극적 템포를 높인다. 역사의 무게감을 배우들의 밀도 있는 연기와 앙상블을 형성하며 현실감 있게 그려낸다.



오세혁은 ‘386세대들의 뜨거운 저항의식이 오늘날에도 진실의 외침과 함성 소리가 가슴으로 부착되어 있는가?’라는 물음표를 연극으로 설정하기 위해 극적구성을 비튼다. 이 사건으로 법정에 선 네 사람은 친구로 설정된다. 권력기관을 대변하는 검사 돈결(에녹 분)과 피고인 주혁(송용진 분)의 변호사 승욱(김주완 분)은 대학 연극반에서 연극을 함께하던 친구들이다. 오세혁은 판사 원달(장용철 분)도 법정에 선 이들의 대학시절 연극반 지도교수로 묶으면서 386세대들의 저항의 시대정신을 ‘연극은 시대의 정신이다’로 앞세우며 시대정신과 진실성을 융합한다. 역사의 시대에 서서 한 목소리를 내던 이들의 외침이 갈라져 있는 오늘날의 현실로 환기되면서 연극적으로 거리감을 좁힌다.

이들이 대학캠퍼스에서 함께 만들었던 연극은 시대정신이며, 무대는 진실을 찾아가는 광장 이다. 연극을 함께한 역사의 동지愛는 80년대 시대의 저항성을 외친 청춘들이다.

이 두 관계를 연극적인 연대 장치로 묶으면서 진실의 외침은 모호한 실종 상태로 연결되고 무대는 이들이 진실의 내면을 고백하는 극장과 소통과 논쟁의 마당이 된다. 보도지침은 연극반의 동지애를 형성하면서 ‘독백’을 통한 인간의 진실성을 우회적으로 흔들고 이들 독백을 통해 진실의 내면을 찾아가는 과정을 유괘하게 장면으로 전환시킨다. 햄릿의 독백을 통해 삶과 인간의 진정성을 역설하고 북, 꽹과리, 징, 장고는 80년대 저항정신을 은유한다. 이들이 연극으로 연대 할 수 있는 것은 연극만이 시대를 향해 진실을 말할 수 있다는 믿음이다. 연극을 통해 진실성을 담아낼 수 있는 것은 소통과 논쟁을 통해 연극이라는 진실성으로 거리감을 좁히는 일이다. 극중 인물 남자(김대곤 분)는 특유의 재치로 다양한 멀티 남과 연극반 남선배로 역할을 다양화 하면서 각 장면마다 웃음으로 온기를 올린다.



연극반 지도교수(원달)는 표현의 자유와 연극을 통해 시대의 정신을 주입하고 연극반 정기공연으로 선택한 갈릴레이 과학자가 진실을 위해 싸우는 과정을 그린 브레히트의 ‘갈릴레의 생애’를 원달의 만류에도 정기공연으로 올린 주혁, 원달, 정배 동료들은 이 공연으로 권력에 의해 고문을 당하는 장면으로 전환되며 참혹한 역사의 시대를 유쾌한 속도로 부착한다. 원달은 이들을 살려내기 위해 권력자(극중 인물 관계자)에게 무릎을 꿇고 이들을 살려내지만 오늘날 판사로 만난 지도교수는 갈라진 이념과 진실의 온도가 모호해진 이들에게 할 수 있는 말은 ‘거리감 좁히기’와 ‘균형감’이다. 이들에게 시대정신을 주입한 강렬함은 노쇠한 현실주의자로 전락된다.



오세혁은 네 사람(원달, 주혁, 정배, 승욱)을 동시에 법정으로 불러 세우면서 오늘날 변화된 이들의 진실의 온도를 측정한다. 현실주의자로 변화 된 판사(원달) 그리고 권력을 대변하는 검사가 된(돈 결), 여전히 진실을 외치며 살아가는 (주혁과 정배) 이 두 사람의 진실의 온기를 감싸고 있는(승욱)은 보도지침을 폭로하는 문건을 들고 진실을 추적하며 재판장에 불려나온 증인들의 소리는 오늘날의 권력을 타격하며 조롱되고 연극반 장면을 통해서는 시대정신의 온기를 주입한다. 마지막 이들을 각각 징역 1년에 자격정지 1년으로 판결한 원달은 “이런 것을 균형이라는 것 인가요” 라고 묻는 정배의 말에 “몰라서 묻냐. 정말 놀라서 묻는 거냐. 그런 눈, 그런 눈으로 보지 마. 다 알 것 같단 눈으로 바라보지 마. 그래 난 균형을 지킨 거야. 내가 지킬 수 있는 균형.” 작가는 역사적 보도지침의 무게감을 빠르게 연극으로 환기시키며 이들이 가는 길에 정의, 진실, 마음의 소리를 부착해 오늘날 거리로 내보낸다.



80년대 진실 된 저항의 외침과 실종



작가 오세혁과 연출 변정주는 뜨거운 역사의 시대에 연극적인 설정과 재료들을 담아 30년이 흐른 오늘날에도 여전히 흐르고 있는 진실의 실종 현상을 들고 한국사회를 겨냥한다. 80년대 권력을 향해 저항하고 한 목소리로 진실의 외침을 연대하던 386세대들은 진보와 보수가 되어 국회로, 검·법조, 대기업으로 또는 한국사회의 엘리트로 성장하면서 이념은 갈라지고 한국사회의 지배계층으로 성장했다. 익숙한 삶의 성장속도는 진실의 온도를 측정하는 기준도 달라졌다. 뜨거운 시대를 향해 가슴으로 토해 냈던 분노와 저항은 가면이 아닌 진실성 이었다. 시대권력에 저항하며 건강한 민주주의 대한민국 사회로 회복시키기 위해 한 목소리로 저항한 연대의 역사와 외침은 오늘날 실종되거나 모호해진 모양으로 한국사회에 부착되어 있다. 역사의 시대에 진실성은 함몰되고, 표현의 자유는 억압된 채, 언론의 자유는 숨죽이던 시절의 보도지침을 들고 오늘날 대학로 한복판에서 시종일관 웃음을 달고 동시대로 달리는 연극 보도지침은 작가 오세혁과 연출 변정주의 ‘시대정신’이다.



극중 인물 원달 역을 맡은 장용철은 노련함으로 극의 무게감을 유지하고 송용진, 안재영, 김주완, 에녹은 장면을 힘 있게 끌고 간다. 특히 배우 김대곤은 보도지침의 무게감을 웃음으로 다이어트 시키며 극에 활력을 넣고 박민정은 장면을 경쾌하게 끌고 가면서 작품의 균형감을 형성하고 있다. 추천하고 싶은 연극이다. 작품평가★★★★



대경대 연극영화과 교수(연극/공연예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