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주요 경찰서에서 살인 피의자가 흉기를 소지하고 유치장에 들어갔지만 경찰은 전혀 파악하지 못했다. 그는 흉기를 꺼내 다른 유치인을 위협했다.
경찰은 다른 유치인의 신고를 받고서야 이를 확인했다. 유치인 자해, 자살 사례가 잇달아 '유치장 부실 관리' 지적이 끊이지 않는 상황에서 또 다시 심각한 허점을 드러낸 것이다. 본보가 취재에 들어갔을 때 경찰은 "그런 사실이 없다"며 극구 발뺌하며 사태 무마를 시도하다 뒤늦게 사실임을 인정했다.
흉기를 지니고 있었던 피의자는 지난 20일 여자친구를 흉기로 찔러 살해한 혐의로 붙잡힌 한모(31)씨다. 26일 오후 서울 송파경찰서 유치장에 입감돼 있는 친구 A씨의 면회를 간 B씨는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A씨와 함께 입감돼 있는 한씨가 A씨에게 흉기를 보여주며 “이걸로 쑤시면 죽는다”는 말을 했다는 것이었다. 한씨의 손에는 칼자루에 붕대가 감긴 길이 20㎝ 정도의 과도가 들려 있었다고 한다.
A씨는 유치장을 관리하는 경찰에게 “(유치장) 안에 살인한 사람이 칼을 들고 있다”고 말했고, 경찰은 곧 한씨가 들고 있던 흉기를 빼앗았다. A씨와 다른 유치인은 한씨와 분리돼 다른 방으로 옮겨졌다.
경찰은 “전혀 그런 사실이 없다”고 부인하다가 1시간25분만에 해당 사실을 뒤늦게 인정했다. 유치관리팀장은 26일 오후 6시5분 기자와의 통화에서 “전혀 그런 사실이 없다. 사실 관계를 파악해 보겠다”고만 말했다. 오히려 “누가 그런 말을 했느냐”고 말하며 발언자를 색출하겠다는 태도를 보였다. 실제로 해당 내용을 기자에게 알려온 제보자는 “경찰이 누가 말했는지를 찾고 있는 것 같다. 익명을 보장해 달라”며 불안해했다.
30분 뒤인 오후 6시35분 한씨의 수사를 담당하는 장병덕 형사과장이 기자에게 전화를 해왔다. 장 과장은 "정황은 잘 모르지만 (경찰이) 굉장히 난처한 상황이 될 수 있다"며 "잘 좀 처리해 달라"고 당부했다. 해당 내용이 다른 경찰에게 전달되는 동안 유치관리팀장은 기자의 전화를 피했다. 1시간쯤 뒤인 오후 7시30분에야 유치관리를 총괄하는 민문기 지능범죄수사과장이 전화를 걸어와 뒤늦게 해당 사실을 인정했다.
민 과장은 “21일 오후 9시37분쯤 한씨를 유치장에 입감하면서 전신 탈의를 한 뒤 정밀 수색을 했다. 금속 탐지기로 검사도 했지만 경고음이 울리지 않았고 흉기를 발견하지 못했다”고 해명했다. 이어 “한씨가 현장에서부터 흉기를 지니고 있었다고 했지만 진술의 신빙성이 의심돼 경위를 파악하고 있다”며 “언제부터 흉기를 갖고 있었는지, 왜 금속 탐지기로 적발이 안 됐는지 등을 조사하고 있다”고 했다. 한씨는 범행 당시 사용했던 흉기를 근처 쓰레기통에 버리고 도주했다. 한씨가 유치장에서 지니고 있던 흉기는 칼날이 깨끗해 범행에 쓰인 것과는 다른 것으로 보인다고 경찰은 설명했다.
송파경찰서는 서장이 경무관급인 서울 시내 핵심 경찰서다. 일선 경찰서 서장은 그보다 계급이 낮은 총경이 맡고 있다. 지난 1월에는 경기 안산단원경찰서 유치장에 수감 중이던 C씨(39·여)가 유치장 화장실에서 소매에 숨겨 들어온 문구용 칼로 자해를 시도해 경찰의 유치장 관리 능력이 도마에 올랐었다. 2014년 1월에는 청주 흥덕경찰서 유치장에 입감돼 있던 50대 남성이 목을 매 숨졌다. 그런데도 여전히 경찰은 유치장에 입감돼 있는 피의자 관리에 소홀했다.
한씨는 지난 19일 송파구의 한 아파트 주차장에서 여자친구를 흉기로 찔러 살해한 혐의로 유치장에 입감된 채 경찰 조사를 받고 있다. 그는 당시로부터 3주전 쯤 여자친구에게 이별 통보를 받고 다투던 중 이 같은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조사됐다. 범행 다음날 붙잡혀 경찰서로 압송된 한씨는 “(여자친구를) 죽일 생각은 없었다. 흉기는 자살하려고 갖고 있었다”고 말했다.
심희정 임주언 기자 simcity@kmib.co.kr
[단독] "쑤시면 죽는다"...살인 피의자 흉기 들고 유치장 들어가는데도
입력 2016-04-27 00:05 수정 2016-04-27 08: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