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서도 13만부가 팔린 세계적인 화제작 ‘사피엔스’(김영사)의 저자 유발 하라리(Yuval N. Harari·40) 이스라엘 히브리대학 역사학과 교수가 한국을 처음 방문했다.
대만과 중국 방문을 마치고 25일 오후 입국한 하라리 교수는 26일 오전 서울 중구 환경재단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인공지능(AI)은 인류의 미래에 대한 가장 위협적인 기술”이라며 “인류가 맞닥뜨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어떤 형태로든 전지구적 정치체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지난해 11월 국내 출간된 ‘사피엔스’는 수렵채집인이던 사피엔스(인간)가 어떻게 오늘날 세계의 지배자가 됐는지를 대담하고 설득력 있게 서술한 책으로 전세계 30여개국에서 출판됐다. 특히 인공지능 알파고 충격 이후 ‘인간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라는 질문이 부상하면서 인공지능 시대 인류의 미래를 전망한 이 책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이날 1시간30분가량 진행된 기자간담회에서 하라리 교수는 다양한 질문들에 시종일관 막힘없이 대답했다.
-책에서 현명한 선택을 하지 않으면 사피엔스는 멸종할 것이라고 했다. 현명한 선택이란 어떤 것인가?
“기술을 이용하는데 있어 현명하다는 것은 기술이 우리를 섬겨야지 우리가 기술을 섬기지 않는 것, 그게 현명하다는 것이다. 우리는 기술이 우리 인생의 문제에 답을 주길 기대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기술이 우리 인생을 통제하도록 만든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기술은 우리가 물은 질문에만 답을 한다는 것이다. 그 질문을 하는 것은 우리라는 걸 기억해야 한다. 그런데 문제는 개인도 그렇고 집단도 그렇고 우리가 진짜 원하는 게 뭔지 모른다는 데 있다. 그러다 보니 인생의 목적을 기술이 정하는 경우까지 있다.”
-중세 전쟁사를 전공했는데, 어떻게 이런 책을 쓰게 됐나?
“중세 전쟁사를 공부하면서 역사적 연구는 이렇게 하는구나 하는 도구를 얻을 수 있었다. 젊은 학자로서 갑자기 인류 전체 역사를 공부할 수는 없다. 그래서 특정 과제를 선택해서 역사학자는 어떻게 해야 하는구나, 그런 기술을 배우는 것이다.”
-본인에게 가장 놀라운 테크놀로지는 무엇이었나? 또 현재 기술 중 인류에 가장 위협적인 기술은 뭐라고 보는가?
“아마도 저한테 개인적으로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기술은 항생제와 백신이 아니었나 싶다. 이게 없었으면 어린 시절 죽었을 지도 모른다. 가장 위협이 되는 기술은 물론 AI(인공지능)다. 권위의 원천이 인간에게서 기계한테로 옮겨가면서 인류가 운명의 조종간을 기계에게 뺏기게 될 수도 있다.”
-사피엔스는 빅히스토리인데, 이같은 빅히스토리가 제국주의나 불평등을 정당화하는 방향으로 흐를 가능성은 없나?
“제국과 제국주의, 불평등의 문제는 분리해서 봐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 제국·제국주의와 관련해서 얘기하자면, 인류가 미래에 도전하고 있는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어떤 형태로든 전 지구적 정치적 체제가 필요하다. 그 체제가 독재적일 필요도 없고, 폭력과 전쟁에 의해 만들어질 필요는 없지만 어떤 형태든지 효과적인 전지구적 체제가 필요하다. 우리가 맞닥뜨리고 있는 문제는 다 전지구적이다. 환경문제든 인공지능이든. 불평등은 이와는 다른 문제다. 실제로 세계적으로 불평등 늘어나고 있다고 보는데, 문제는 이게 지금 시작이라는 것이다. 인공지능이나 생명공할 때문에 불평등은 더 커질 것이다. 기술을 지배하는 극소수 엘리트가 세상의 부와 권력을 독점하는 게 점점 더 쉬워질 것이다. 불평등은 인류가 맞닥뜨리고 있는 세계적 문제의 한 예가 될 수 있다.”
-10년 후 미래를 어떻게 예상하나?
“10년은 너무 짧고, 30년, 40년을 보겠다. 인공지능은 다는 아니어도 거의 모든 직업에서 인간을 몰아낼 것으로 예상이 된다. 물론 새로운 직업이 생기겠지만, 그때 되면 이 새로운 직업도 인공지능이 더 잘 할 수도 있다. 감정에 대한 기술은 인간이 인공지능에 대해 우위를 점하게 될 것이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사실은 감정을 공부해보면 감정은 영적이거나 신비한 현상이 아니라 생화학적 알고리즘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의 감정지능이 인공지능보다 더 뛰어날 것이라고 확신하기 어렵다. 예를 들어, 오늘날 이미 인공지능이 감정을 알아차리고 분석하는데 더 뛰어난 능력을 보이고 있다.”
-미래에 직업이 다 없어진다면 지금 자녀 교육을 어떻게 해야 하나?
“현재 학교에서 가르치는 80∼90%는 이 아이들이 40대가 됐을 때 별로 쓸모없는 것일 가능성이 높다. 어쩌면 수업시간이 아니라 휴식시간에 배우는 것만이 쓸모가 있을 것이다. 지금 우리 교육체제는 정치체제, 경제체제와 마찬가지로 산업시대에 만들어진 것이다. 사실 앞으로 2050년에 세상이 어떨지 전혀 알 수가 없다. 다만 아는 것은 지금과 완전히 다른 것이라는 것뿐이다. 지금 아이들이야말로 선생님이나 연장자들에게 배워서 인생을 준비하는 게 불가능한 역사상 첫 세대가 될지 모른다. 부모가 아이들에게 자기 경험에 따라 조언한다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있다. 아마도 지금 우리가 아이들에게 가르쳐 줄 수 있는 것은 어떻게 늘 변화하며 살 수 있을까, 어떻게 내가 모른다는 것을 알 수 있을까, 그런 기술을 가르쳐 주는 것이 아닐까 싶다.”
-인간이 어떻게 행복을 찾을 수 있을까?
“역사적으로 인간은 늘 자기 주변의 세상을 바꾸면서 행복해지려고 노력했다. 환경, 경제, 정치를 바꾸면 행복해질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는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내면을 바라본다. 앞으로는 우리의 생화학적 조성, 즉 DNA나 두뇌를 바꾸면 행복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것이 해결책이 아닐 수 있다. 인간이 뭐를 성취해내든 인간의 본성은 뭔가를 더 원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더 많은 성취를 바랄 수밖에 없다. 이런 게 변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바깥세상을 얼마나 바꾸든 만족은 없고 갈망만 존재할 것이다.”
-당신은 행복을 어떻게 찾나?
“불교의 명상을 수행한다. 하루에 2시간씩 꼭 명상을 한다. 그리고 매년 30일에서 60일은 쉰다. 이메일도 안 쓰고, 전화도 안 받고, 일도 안 하고. 이것이 내게 집중력과 균형을 주고, 나로 하여금 나는 누구인가, 이 세상에서 나의 위치는 어디인가 이해하게 해준다. 내가 누구인가? 인생이 뭔가? 답을 찾지 못한다면 평화나 행복을 기대할 수 없다. 또 채식주의자로 고기나 달걀, 유제품을 안 먹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마음과 과학의 관계는 어떻게 변할까?
“마음은 아직 과학이 이해하는데 실패한 주제다. 과학이 몸과 두뇌를 이해하는 건 점점 더 발전하고 있지만. 과학자는 마음은 두뇌가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가정한다. 뇌에서 수백만개 뉴런 때문에 감정을 만들어낸다고 가정한다. 실제로 두뇌의 이런 부분에 이런 패턴으로 불이 들어오면 분노가 생기고, 저런 부분에 저렇게 불이 들어오면 행복이 생긴다, 이런 건 찾아내고 있다. 그렇지만 수백만 개의 뉴런이 전기신호를 쏘는 데 어떻게 주관적인 감정을 만들어지는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인공지능에 대해서 알아야 하는 것은 아직 의식이 없다는 것이다. 인공지능이지 인공의식이 아니다. 아무리 힘센 컴퓨터도 소프트웨어도 의식은 영이다. 알파고는 아무 것도 느끼지 못했다. 경기하면서 불안도 못 느꼈고 이겼다고 기쁨도 느끼지 못했다.”
-인공지능 같은 위협은 작은 공동체 방식으로는 해결이 안 되는가?
“제가 생각하기로는 현재 강자가 지배하는 전지구적 정치체제의 위협보다 인간이 뿔뿔이 흩어질 때 위협이 더 크다고 생각한다. 작은 공동체의 문제는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지구적 문제, 예컨대 지구온난화 같은 문제를 이해를 하거나 해결할 수 있는 힘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고대사회에서는 농경부락이나 마을이 제국 없이도 잘 살 수 있었다. 위협이 국지적이었기 때문이다. 솔직히 말해서 현재의 기술 정도 하에서는 지구온난화를 막는 유일한 방법은 경제성장을 멈추는 것이다. 그런데 어떤 정부도 공식적으로 경제성장 멈추겠다고 하면 살아남을 수 없다. 모든 정부의 가장 큰 가치는 경제성장이기 때문이다. 미국, 중국, 인도 등 어떤 국가도 만약에 기꺼이 경제성장을 포기하자고 하면 살아남을 수 없다. 모든 나라의 제1순위 가치는 경제성장이다. 지금처럼 개별 국가 위에 존재하는 전지구적 힘이나 정책이 없는 상태에서 환경문제나 온난화 문제를 효과적으로 해결할 방법은 없다.”
-전지구적 정치체제를 말했는데, 새로운 모델을 만들자면 희생이 있을 수밖에 없지 않나?
“새로운 모델은 큰 전쟁이나 재앙, 갈등에서 나오는 경우가 많다. 우리가 진보할 때 치르는 대가일 수 있다. 새로운 모델이 정착돼 새로운 질서가 만들어질 때까지 죽음과 고통, 파괴를 가져온다. 그러나 꼭 그래야만 하는 건 아니다. 새로운 모델을 평화적으로 만들어낸 경우도 있다. 예를 들자면 핵무기가 나왔고 거기에 대한 대응으로 강대국들이 지정학적 룰을 완전히 바꾸어놓았기 때문에 1945년 이후 핵무기가 전혀 사용되지 않았다. 상대적으로 볼 때 현재 인류는 역사상 가장 평화로운 시기를 누리고 있다. 이게 핵무기 때문이다. 인간이 핵전쟁이란 도전을 평화로운 방식으로 해결한 걸 봤을 때, 인공지능 같은 기술적 위협도 평화적 해결이 가능하지 않을까 그런 희망을 품어 본다. 또 다른 예는 20세기 최대 혁명인 페미니스트 혁명이다. 수천 년 동안 전 세계 거의 모든 사회에서 가부장제가 있었고, 여성은 낮은 지위 누려왔다. 페미니스트 혁명은 우리 사회를 완전히 바꿔 놓았다. 그런데 이것 때문에 죽은 사람은 거의 없다.”
-페미니즘 혁명이라고 했지만 여성의 어려움은 여전하다. 저출산도 문제고.
“저출산은 좋은 소식 아닌가? 왜냐하면 인간이 너무 많으니까. 한국뿐 아니라 세계 각국에서 저출산은 여성의 교육수준이 높아지고 결정권이 늘어나는 것과 상관관계가 있는 것으로 나온다. 생태학적으로도 인간이 70억 대신 10억이다 그러면 굉장히 좋은 소식이다. 한국도 과거에 이보다 인구가 훨씬 적은 시대가 있었다.”
-세계정부가 나오지 않으면 문제를 해결 어렵다고 했는데, 녹색당이나 기본소득 같은 대안적 정치 움직임도 의미가 없다는 것인가?
“녹색당은 상당히 고무적인 정치적 현상이다. 그러나 나라끼리 경쟁하는 한 생태계 위협을 막을 수 없을 것이다. 현재 기술 상황 하에서는 경제성장 멈추지 않고는 지구온난화 막을 수 없다. 그러나 녹색당이 정권을 잡더라도 경제성장 멈추겠다고 말하면 정권을 빼앗기게 될 것이다. 만약에 모든 중국인, 모든 인도인, 모두 미국인이 똑같은 경제수준을 누리게 된다면 세계는 망하게 될 것이다. 기본소득은 지금 탐색되고 있는 모델이다. 지금은 일을 해야 수입이 있지만 일을 안 해도 수입이 있을까 탐색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가능할까? 선례도 없다. 역사를 볼 때, 새로운 모델이 종이 위에서는 근사하게 보여도 실행에서는 문제가 많이 일어난다. 공산주의가 그렇다.”
-한국에 오기 전에 중국을 갔는데 중국에 대한 소감은?
“중국에선 지난 몇 십 년 동안 희망도 있고 긍정적인 발달 상황도 있었다. 아마도 지금의 중국 정부는 매년 대량 기근을 맞닥뜨리지 않는 역사상 첫 번째 정부일 것이다. 지난 30∼40년간 중국인들의 생활수준 향상은 정말 놀랄만하다. 중국이 세계 열강으로 떠오르고 있는데, 중국은 비교적 책임감 있고 온건한 편이다. 넓은 역사적 시각에서 다른 열강들과 비교할 때, 중국은 상당히 책임 있게 행동하는 편이다.”
-새 책이 나온다고 들었다.
“올해 9월 ‘미래의 역사’라는 제목의 새 책이 영어로 나온다. 한국에서는 1년 뒤 번역돼 나올 것이다. 인류의 미래에 대한 책이다. 예측이나 예언서가 아니다. 인간의 미래가 어떨지 누구도 모른다. 예언서라기보다 여러 가지 가능성, 기회, 위협에 대해 접근해보려는 시도다. 그래서 미래와 관련해 우리가 어떤 행동을 취할 수 있을까, 그 경로를 지도로 그려보고자 한다. 우리가 진짜 뭘 할까 그건 아무도 모른다.”
-한국에 대한 첫 인상은?
“공기가 베이징보다 훨씬 좋다. 베이징에 있다가 심각하게 목에 문제가 생겨서 한국 도착하자마자 바로 병원으로 가야 했다. 아직 한국은 거의 못 봤다. 공항, 병원, 호텔, 그리고 여기가 전부다.”
-지금 관심을 가지고 있는 문제는?
“새 책을 이제 막 끝났다. 다음 프로젝트는 ‘사피엔스’에 기반을 둔 10∼11세 아이들을 위한 책을 쓸까 한다.”
-당신은 책을 객관적으로 썼다고 생각하는가?
“역사를 완전히 객관적으로 쓰는 건 불가능하다. 관점이란 것에 영향을 받게 된다. 정말 진실만을 애기했다 하더라도 이건 얘기했고 이건 얘기하지 않았다는 문제는 생긴다. 나도 사피엔스이다 보니 아무래도 사피엔스에 집중하게 마련이다. 그러나 다른 종에도 집중하려고 노력했다. 소나 돼지나 말 같은 동물들도 다 감각이 있고 감정이 있다.”
-인구가 너무 많다고 했는데, 적정한 인구 수준은 얼마라고 보나?
“이 분야 전문가는 아니다. 그러나 모든 전문가들이 70억은 너무 많다는데 동의할 것이다. 이 인구는 지구라는 혹성에 부담이 된다. 혹성을 위해서도 인구가 주는 게 바람직하다고 본다.”
하라리 교수는 26일 환경재단과 28일 경희대 강연회, 29일 박원순 서울시장과의 대담, 사인회 등의 일정을 소화하고 6월 1일 출국한다.
김남중 기자 njkim@kmib.co.kr
유발 하라리 "인공지능이 인류 위협... 전지구적 정치체제 필요"
입력 2016-04-26 16:01 수정 2016-04-26 16: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