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는 그날 밤 창문이 흔들리는 바람에 잠에서 깼어요. 폭풍인 줄 알았다나 봐요.”
1986년 4월 26일 새벽 1시 23분. 당시 초등학교 4학년이었던 올렉산드르 갈루는 또렷하게 그때를 기억한다. 우크라이나 체르노빌에서 인류 역사상 최악의 원자력 발전소 사고가 터진 날이다.
당시 체르노빌 발전소 제 4원자로가 폭발하면서 주변 일대는 불길에 휩싸였고, 수천 킬로미터가 낙진 구름에 덮였다. 체르노빌에서 겨우 3㎞ 이내인 프리피야티에 살던 갈루는 사고 이틀 뒤 대피하던 순간도 기억한다.
“정부 사람들은 사흘치 식량만 챙기라고 했어요. 마을 사람들도 금방 돌아올 거라고들 생각했죠. 마치 놀러가는 것처럼 사람들이 즐거운 표정으로 테니스라켓을 챙기던 게 기억나요.” 그러나 이들 중 살던 곳에 돌아온 이는 아무도 없었다.
프리랜서 사진기자이자 다큐영상전문가인 이오나 몰도반은 미국 인터넷매체 허핑턴포스트에 체르노빌 참사 30주년인 26일(현지시간)을 맞아 현장 소식을 전했다. 현재 체르노빌 사고가 난 주변 30㎞ 이내 지역은 특별관리 아래 관광코스가 됐다.
이곳에서 2009년부터 500회 이상 투어 가이드를 맡은 니콜라이 포민(39)에 따르면 예전 이 지역에 살던 주민들은 종종 투어를 온다. 예전 살던 곳에 데려다주면 하나같이 울음을 터뜨린다.
키예프에 있는 피해자 전용 의료센터는 체르노빌 사고가 터진 지 약 4개월 만인 1986년 8월 1일 문을 열었다. 이곳을 거쳐 간 이들은 아동만 6만명, 성인은 60만명에 달한다. 지난해에도 이곳에는 방사능 피해를 호소하는 아이들 100명이 입원해 있었다. 이 병원 관리자에 따르면 지난해까지 체르노빌 사고 피해자는 200만1799명이었으며 이중 아동은 45만3391명이었다.
사고 30년이 흐른 지금 우크라이나에 남아있는 원자력발전소는 15곳이다. 이들 중 구 소비에트연방 시절 지어진 12곳은 사용연한이 2020년까지다. 그러나 정부와 운영업체는 이를 10년 더 운행할 계획이다. 4곳은 이미 연장허가를 받았다. 최근 내전과 불황이 겹친 우크라이나에게는 이들을 폐쇄할 시 딱히 대책이 없어서다.
여파는 유럽에도 아직 남아있다. 스위스 관영 스위스인포에 따르면 체르노빌로부터 약 2000㎞ 떨어진 알프스 산맥 남쪽 도시 티시노에도 아직 당시 방사능 흔적이 남아있다. 당시 오염된 낙진 구름이 이곳에서 비를 뿌려서다. 이곳에서 방사능 물질 세슘137 수치는 다른 지역의 100배 이상이다.
조효석 기자 prome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