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시, “환자 폐 손상은 봄철 황사 때문일 가능성”

입력 2016-04-24 16:37 수정 2016-04-24 17:03
가습기 살균제 사망사건의 주범 격인 옥시레킷벤키저(옥시)가 책임을 피하기 위해 벌인 ‘변칙플레이’가 속속 드러나고 있다. 옥시 측은 ‘폐 손상은 봄철 황사 때문에 일어났을 가능성이 있다’는 의견서를 검찰에 제출하기도 했다. 또한 자신들에게 유리한 실험결과나 필요한 부문만 취사선택해 의견서에 포함시켰다.

24일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팀장 이철희 부장검사)에 따르면 옥시 측은 검찰이 수사에 들어간 직후 대형 법무법인 등의 도움을 받아 가습기 살균제와 폐 손상의 인과관계를 부인하는 내용의 의견서를 제출했다.

옥시 측은 의견서에서 “폐 질환은 비특이성 질환이다. 황사나 꽃가루, 간접흡연 등의 요인에 의해 생길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가습기 살균제에 따른 폐 손상 가능성은 제외한 채 “폐 질환을 야기할 수 있는 제3의 요소가 질병관리본부 실험 과정에서 배제되지 않았다. 2012년 발표된 질병관리본부의 역학조사 결과를 신뢰하기 어렵다”고 했다.

하지만 검찰은 최근 국내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한 집단토론에서 질병관리본부의 역학조사 결과는 과학적으로 신뢰할 수 있다는 답을 얻었다. 옥시 측의 주장은 책임에서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쓴 정황에 불과하다는 입장이다.

검찰은 옥시 측이 자신들에게 유리한 실험 결과만을 의견서에 포함시켰다는 사실을 이미 확인했다. 옥시는 2011년 9월 한국건설생활환경시험연구원(KCL)과 서울대 C교수 연구팀에 가습기 살균제 원료 물질인 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PHMG)의 독성 실험을 의뢰했다. KCL에는 고농도 실험을, 서울대엔 저농도 실험을 맡겼다.

KCL 실험 결과는 질병관리본부의 실험과 유사하게 나왔지만 옥시 측은 이 보고서를 수령조차 하지 않았다. 서울대 C교수팀도 그해 11월 생식독성 실험에서 가습기 살균제와 폐 손상 사이 인과관계가 있다는 결과를 중간보고 형태로 알렸지만 옥시 측은 이를 무시했다. 서울대 C교수팀은 최종보고서에 ‘가습기 살균제와 폐질환 사이에 인과관계가 명확치 않다. 다만 PHMG가 간·신장 등에 영향을 주는 등 전신 독성 가능성도 있으니 추가 실험이 필요하다'는 내용을 담았지만, 옥시 측은 ‘인과관계가 명확치 않다’는 부분만 발췌해 검찰에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이번 주부터 옥시 측 형사 처벌 대상자들을 소환 조사할 예정이다. 옥시의 신현우 전 대표 등 전·현직 이사진이 주요 소환 대상으로 거론된다. 제품개발에 관여한 옥시의 해외연구소 관계자, 제품의 판매 등을 승인한 영국 본사 임원 등도 소환 대상에 이름을 올릴 수 있다. 범죄 혐의 입증은 이미 7할 정도 이뤄졌다는 게 검찰 내부의 평가다.

황인호 기자 inhovator@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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