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공장, 여자는 감옥?

입력 2016-04-23 10:00
영화 '친정 엄마'의 스틸 컷

엄마와 여자는 어떻게 다를까. 당신이라면 어떻게 정의할 텐가.

박후기(48) 시인이 흥미로운 정의를 내렸다. 22일 출간된 시집 ‘엄마라는 공장 여자라는 감옥’(출판사 가쎄)에서다. 시집에 실린 70편의 시가 모두 엄마와 여자의 삶을 소재로 하는 독특한 시집이다.

그가 생각하는 엄마와 여자의 차이는 바로 시집 제목이 요약해준다. 그 차이를 단 몇 줄로, 장작이 짝 갈라지듯 구분해낸다.

먼저 시 ‘엄마라는 공장’은 이렇다.

“생이/문 닫는 날까지…//엄마라는 공장은/쉬지 않고 돌아갑니다.”

또 시 ‘여자라는 감옥’을 보자.

“여자는 일생 동안 탈옥을 꿈꾸고/ 여자는 일생 동안 출소를 꿈꾼다// 도망칠 수밖에 없는 생이란 걸 알기에/ 여자는 탈옥을 꿈꾸고, 도망칠 수 없는 생이라는 걸 알기에/ 엄마는 출소만 기다린다”

탈옥과 출소는 모두 벗어나고자 하는 욕망을 전제한다. 그런데도 여자는 꿈꾸는 탈옥을 어머니는 욕망하지 못한다. 끝내 감당해야 모성의 몫이 있기에 만기출소 말고는 방법이 없는 것이다.

아버지와 어머니에 대한, 아들로서의 시인의 시선도 재미있다.

“무언가를 참고 있는/ 엄마를 보면/ 고요한 섬 같았다// 다시 바다로 불려 나가는 파도처럼, /엄마 앞에서만 요란한 아버지는/ 집만 나서면 잔잔해졌다.” (‘엄마라는 섬’)

여느 가정에서나 볼 수 풍경에 빙그레 웃음짓게 하는 시다.

전체적으로는 어머니에 대한 절절한 사모곡이다. 그에게도 어머니는 보상받지 못한 무한희생의 신화이다. ‘식구들에게 압류당한 세월을/ 고스란히 서랍에 넣어두었으나,/ 어느 날 부터인가/ 식구들은 서랍을 사용하지 않았다’는 ‘서랍 같은 존재’ 혹은 ‘자식들이 엄마를 밟고 올라갔다(중략) 엄마 치마가 자꾸 피곤한 계단처럼 흘러내렸다’는 계단으로 어머니의 삶은 비유된다.

그 삶 자체가 자식에게 가르침을 주기도 한다. ‘엄마 열무김치 드시다/ 부실한 어금니 사이 질긴 열무 잎이 끼어/ 삼키지도 뱉지도 못하다 결국/ 토하며 괴로워하던 일 떠올라/ 나는 열무김치를 잘 먹지 않는다’는 시인은 삶이 ‘삼킬 수도 없고 뱉을 수도 없는’ 거라는 걸 어머니에 대한 기억을 통해 받아들이게 된다.

엄마와 여자에 관한 아포리즘 연시는 시인의 재기발랄함을 보여준다. ‘여자는 만들어지고, 엄마는 문드러진다’거나 엄마는 ‘나이를 묻고(bury), 여자는 나이를 묻는다(ask)’는 등의 비유가 무릎을 치게 한다. 경쾌한 것 같으면서도 묵직한 뒷맛이 있다.

박 시인은 2003년 ‘작가세계’ 신인상으로 등단했다. 시집 ‘종이는 나무의 유전자를 갖고 있다’ 등을 냈다. 2006년 신동엽 문학상을 수상했다.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