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양호 회장의 해운왕 꿈 스러지나

입력 2016-04-22 17:17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대한항공 제공

조양호 한진해운 회장이 22일 경영권을 포기하고 회사를 채권단 자율협약에 맡기기로 하면서 정부의 본격적인 취약업종 구조조정 드라이브가 시동을 걸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번 한진해운의 채권단 자율협약 결정으로 회생을 속단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많다. 해운 항공 육상운송 등의 융합을 통한 글로벌 종합물류그룹으로의 도약이라는 조 회장의 꿈도 물거품 될 가능성이 커졌다.

◇결국 채권단에 운명 맡긴 한진해운=한진해운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발발과 함께 쇠락의 기미를 보이기 시작했다. 금융위기 이후 유럽과 중동 등 해운강국 지역에 찬바람이 몰아쳤고 이에 따른 해운업계 불황이 예상보다 길어지면서 한진해운도 유동성 위기에 처해졌다.

이때 백기사로 조양호 회장이 나섰다. 조 회장은 대한항공을 통해 한진해운에 자금을 지원한데 이어 2014년 4월에는 아예 직접 한진해운 대표이사 회장으로 취임하면서 회생을 진두지휘하게 된다.

그러나 저성장이 장기화하면서 부채가 눈덩이처럼 불어나 끝없는 추락의 길로 접어든다. 고정비 부담도 멍에로 다가왔다. 한진해운이 올해 배를 빌려쓰는 대가로 지불하는 용선료만 1조원에 이르는 것으로 전해졌다. 한진해운은 용선료 부담이 높자 2014년과 지난해 모두 32척의 선박을 반납했다.

결국 청와대 등 정부는 한진해운에 결단을 강요했다. 채권단인 산업은행 이동걸 회장은 최근 “경영권 포기 수준의 구조조정안을 내놓지 않으면 정부 지원을 받기 어려울 것”이라고 압박했고 조 회장은 이에 굴복했다. 앞서 현대상선도 비슷한 과정을 거쳐 조건부 자율협약에 들어간 상태다.

◇회생 가능할까=조 회장이 채권단 자율협약 수용이라는 결단을 내렸지만 이는 회생의 첫 걸음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많다. 우선 자율협약은 금융권 부채에 대해서만 효력이 있어 회사채와 상거래 채무 등에는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자율협약은 회사채 등 사채권자들의 만기 연장과 선주들을 대상으로 한 용선료 인하 협상이 성공한다는 전제가 깔려있다. 결국 용선료 협상에 성패가 달려있다는 것이다. 메리츠종금증권 김승철 연구원은 “인력감축이나 자산매각, 용선료 협상 등의 자구안이 제시될 것 같다”고 말했다. 오너의 대규모 사재 출연 등 고강도 자구안도 필요할 수 있다. 회생으로 가는 길은 여전히 멀고 험하다.

◇종합물류그룹의 꿈 스러지나=조양호 회장은 지난 1월 열린 재계 신년 인사회에서 “해운업은 한국 물류 산업에서 필수적인 분야여서 한진해운을 꼭 살리겠다”고 말했다. 그만큼 조 회장의 애착은 깊었지만 결국 한진해운은 그의 손에서 떠나갔다.

한진해운은 조 회장의 부친인 고(故) 조중훈 한진그룹 창업주가 1977년 국내 최초의 컨테이너 전용선사로 세운 회사다. 그때부터 나온 ‘육·해·공 종합물류 그룹’은 창업주의 지상 명령으로 그룹의 지향점이 됐다.

하지만 조 창업주가 2002년 사망하면서 형제간 계열분리로 인해 삼남 조수호 회장이 한진해운을, 장남 조양호 회장은 대한항공과 한진그룹을 맡았다. 조수호 회장이 2006년 사망한 뒤 최은영 유스홀딩스 회장이 남편을 이어 한진해운을 맡았지만 결국 계속된 유동성 위기로 2014년 손을 뗐다.

조 회장은 아버지의 꿈을 이루기 위해 무보수 선언을 하고 지금까지 급여를 받지 않았지만 세계해운경기 악화라는 악재를 넘지는 못했다.

고세욱 기자 swkoh@kmib.co.kr